<분수대>나스카와 한국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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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남미 페루의 선사시대 유적 나스카의 그림을 한국인이 훼손했다는 보도가 들린다.헬기를 타고 그 위를 날고,그림 위에 착륙까지 했다는 것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짓이 아닐까. 수도 리마에서 남쪽으로 약 5백㎞ 떨어진 나스카의 그림은 황량한 사막 위에 돌무더기로 그려진 거대한 그림으로 비행기를 타고 공중에 올라가야만 볼 수 있는 인류 문명의 불가사의(不可思議)중 하나다.그림 하나의 길이가 수백,어떤 것은 7~8㎞에 이른다니 왜 그런 그림이 그려졌는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고대문명의 수수께끼다.고래.원숭이.거미.독수리.개.나무.우주인 비슷한 모형.펠리컨등을 그린 이 그림을 두고 고고학자들은 외계인이 다녀간 흔적,또는 지구상에 또 다른 문명이 존재했었다는 가설을 내세우고 있다.

두고두고 연구해야 할 이 인류문명의 유산을 한국인들이 광고 필름을 찍는다고 훼손했다는 보도가 있으나 그런 의혹을 받는 한국 회사측에선 극구 부인하고 있다.무슨 오해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인류문명의 유산은 크건 작건 후세의 지극한 보호대상이 되고 있음을 한시라도 있지 말아야 한다.

열혈 지도자 나세르가 건설한 나일강 중류의 아스완댐은 이집트의 기근을 없앴으나 아부 심벨의 유적을 수몰위기로 몰아 넣었다.다행히 유네스코가 주동이 돼 이 거대한 석상을 조각조각 내 수몰지대 밖으로 옮겨 복원함으로써 나일강문명의 걸작은 지금도 후세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캄보디아 내전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앙코르 와트 대사원의 안위(安危)를 걱정하는 지식인들은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최근에 다시 터진 느닷없는 내전은 또 누구의 밤잠을 설치게 할지 모르겠다.

좁은 반도내에서나마 한국인들은 아기자기한 문명을 쌓아 나갔다.그런데 경주의 신라 왕릉이 도굴꾼들의 손에 황폐화한지는 오래고 최근엔 경남 고성(固城)의 공룡발자국 유적이 무분별한 개발로 훼손되고 주변은 쓰레기장으로 변한다는 소식이 들린다.안에서 자기의 문화유산이나 문명유적을 아끼지 못하는 완미(頑迷)한 마음은 밖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인가 보다.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는 민족이라면 그 이름에 맞게 행동해야 상응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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