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作 '화척' ·최명희作 '혼불' ·'한국중단편소설 50' 읽어볼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일단 잡으면 밤을 환히 새우게 하는 소설책이 있다. 재미와 감동과 교양이 있기 때문.흥미 위주로 그냥 줄줄 읽어넘기게 하는 것이 대중소설이고 한장 한장 마다 마음에 새겨두고픈 구절이 있는게 본격소설로 보면 된다.

올 여름 대중소설에 결코 뒤지지 않는 재미와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마음을 확 트이게 하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대하소설'객주'와'활빈도'로 대형작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한 김주영씨의 '화척'(전5권.문이당刊)을 권하고 싶다. 화척(禾尺)은 백정과 같은 고려시대 천민을 이르는 말.고려말 무신정권 시대를 배경으로 한 축으로는 권력의 암투를 그리면서 또 한 축에서는 화척들의 비참한 삶을 다루고 있다. 쿠데타와 반란의 시대,암투상이 활극 같은 속도감을 주면서도 작가의 걸쭉한 입담과 문체에 의해 우리 말과 우리 소설을 읽는 맛을 더해 준다.

'화척'이 민족의 잡초같은 야성적 생명력을 드러낸다면 최명희씨의 '혼불'(전10권.한길사)은 풀꽃같이 가녀리고 슬픈 민족 정서와 혼의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최씨가 18년간 혼신을 다해 써내려간 이 작품은 전북 남원 양반집 맏며느리 3대의 이야기를 축으로 한다. 일제 식민 치하에서 몰락해 가는 가문을 지키고 일으켜 세우려는 여인들의 삶과 함께 당대 우리 민족의 풍속이 섬세하게 재현되고 있다.

도도한 이야기 흐름에 따라 색실로 수놓듯이 펼쳐지는 우리의 풍속들을 어릴 적 기억을 되살리며 읽는 것만으로도 올 여름 마음의 양식을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대하.장편의 굵직한 이야기와 묵직한 감동도 좋지만 중.단편 소설의 문예 향기에 흠뻑 취하는 것도 피서와 함께 휴가철의 보람을 안겨줄 것이다.

대표적 현역 문학평론가 55명이 해방 이후 90년대 초까지발표된 중.단편 소설 중 50편을 엄선해 시대순으로 배열한 '한국대표중단편소설50'(전5권.중앙M&B)은 한국 현대 소설의 정수를 경제적으로 섭렵하게 한다. 이경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