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F서 흘러 넘친 뭉칫돈 어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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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앞뒤 돌아보지 않고 단기자금 시장으로만 직행하던 돈이 다소 주춤거리는 조짐이 보인다.

대표적인 초단기 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에선 21일 이후 지난달 말까지 1조7000억원가량이 순유출됐다. 설 연휴 직전인 23일과 직후인 28일에는 각각 1조원, 1조1000억원이 빠져나갔다.

이 돈의 행방이 궁금한 와중에 지난주 채권형 펀드에 1조2000억원의 신규 자금이 유입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소식은 단기자금 시장인 MMF에서 돈이 넘쳐 흘러 주변으로 흩어지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으로 연결됐다. 즉 주식형 펀드나 채권형 펀드 등 MMF에 비해 만기가 긴 금융상품에 가는 것 아니냐는 기대다. 이런 기대감은 MMF가 뭉칫돈들을 계속 붙잡고 있기 힘든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점차 커지고 있다. 즉 한국은행의 정책금리 인하로 인해 MMF 수익률이 나빠진 데다 자주 들락거리는 뭉칫돈을 운용사들이 기피하고 있어 갈 곳이 마땅찮다.

지난해 9월 중순 미국계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이후 뭉칫돈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바람에 MMF 설정액은 올 들어 100조원 선을 넘어섰다. 올 들어 지난달 29일까지 전체 펀드에 들어온 돈 19조6000억원 중 18조9000억원이 MMF로 몰릴 정도였다. 반면 주식형 펀드로 들어온 돈은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하면 630억원에 불과하다.

이런 ‘쏠림 현상’의 주역은 은행이다. MMF 자금 중 70조원가량은 기관 자금이고, 그중 80~90%가 은행이 맡긴 돈이라는 게 증권업계의 추산이다. 금융위기 이후 한국은행은 은행에 자금을 공급했지만 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느라 대출을 늘리지 못했다. 마땅히 운용할 곳이 없자 돈은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MMF로 빨려갔다.

그런데 은행 돈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문제가 생겼다. 펀드의 안정성이 위협받는 상태가 빚어진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운용사 채권 담당자는 “은행 자금의 속성상 돈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데다 월말이면 한꺼번에 빠져나간다”면서 “펀드의 안정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대규모 은행 자금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MMF 금리도 지난달 초 4%대 후반에서 최근에는 3%대로 떨어졌다. 아이투신운용 김형호 채권운용본부장은 “MMF 금리도 시차를 두고 시중금리를 따라 떨어질 수밖에 없고, 금융사들도 수익성을 생각할 때 언제까지나 돈을 쥐고만 있기는 힘들다”며 “최근 회사채 매입을 문의하는 경우도 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기자금 시장에 잠긴 돈이 기업자금시장 등 실물로 흘러가기에는 아직 걸림돌이 많다. 경기 침체와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돈이 확신을 갖고 움직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신영증권 김세중 투자전략팀장은 “금융시장인 댐에는 물이 가득하지만 실물인 댐 밖은 가뭄으로 바짝바짝 마르고 있는 격”이라면서 “하지만 실물경기가 가파르게 하강하고 있어 시중 부동자금이 실물로 옮겨가기는 어렵고, 증시로 유입되는 시기도 상반기가 지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 이재훈 연구원도 “한은이 추가로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란 기대도 커 당분간 MMF 선호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면서 “해빙이 시작되더라도 주식으로 바로 흘러가기보다는 우선 회사채를 거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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