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보고세로읽기>신세대 패션 그리고 춤 근대적 자아의 일상적 실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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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출강하던 학교의 종강 파티에 참석했다.참석을 권유하던 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선생님의 노고에 감사하는 뜻에서 어쩌고 하길래'이건 재미없는 사은회 같은 자리겠구나'며 지레짐작하고 있다가,그래도 어떻게 노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또 나중에서야 이 파티가 댄스 파티인 걸 알고서는 기꺼이 끼어들었다.파티 참석자들이 주로 연극이나 무용을 전공으로 삼은 학생들인지라 춤은 물론이고 몸매나 몸놀림,그리고 패션도 볼거리였다.스포츠 브래지어에 배꼽을 내놓고 열심히 돌리는 이,하이힐을 벗고 맨발로 추는 이,펑크 헤어 스타일에 문신을 새긴 팔을 휘젓는 이,땀으로 범벅인 채 브레이크 댄스나 힙합을 추는 이.오랜만에 진수성찬의 눈요기를 즐길 수 있어서 흐뭇했다.

아마 TV의 시사고발 프로에서 이 장면을 다뤘다면 신세대의 소비적 환락이 어쩌고,탈선적 유흥 실태가 저쩌고 하면서 꽤나 충격적이고 반사회적인 이미지로 포장했을 것이다.

그런 시각의 반은 질투심에서 빚어진 것이고 나머지 반은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그리고 이 둘은 상승작용을 하면서 서로를 더 부풀리게 마련이다.물론 이들의 패션 중에는 유행을 좇아가기 바쁜 소위 브랜드 제품도 있었고,또 그 춤은 보기에 따라서는 아주 극단적으로 성애적(性愛的) 의미를 띠고 있었다.하지만 나는 70년대에 그 컴컴한 음악다방과 고고장에 드나들던 나름의 내력을 살려서 기꺼이 그 열기와 도취와 광기와 희열에 빠져들었다.박정희로부터 내가 받은 유일한 혜택이 바로 그 고고장 문화니까 말이다.

신세대에게 패션은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할 수 없이 입는 옷이 아니다.그것은 이미 몸의 일부분이며,자신이 만들어내는 자신의 이미지이고 자기의 스타일이다.이 이미지와 스타일을 위해서 상업적 대중문화가 제공하는 그 다양한 레퍼토리 중에서 제각각 맞는 것을 선택하고 조합한 결과가 패션인 것이다.시장은 자본에 의해 지배되지만 소비에는 젊은이들의 상징적 선택이 작용한다.그리고 이러한 상징성.창조성에 의해 젊은이들의 집단적 정체성과 개인적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춤의 경우는 남성과 여성이 극단적으로 구분된다.한국의 신세대 남성의 춤은 그저 그렇다.반면에 우리의 신세대 여성들은 세계적으로 가장 섹시하고도 도발적으로 춤을 춘다.그것은 일단 남성의 성적 응시를 끌어내려는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단지 거기에 멈추는 것은 아니다.여자들끼리만 둘씩 셋씩 모여 서로 동작을 맞춰가며 춤을 추는 경우가 눈에 띄었다.묘하게도 남성의 접근이나 틈입을 배제하거나 퉁겨내는 제법 팽팽한 분위기 같은 것이 느껴졌다.

젊은 여성의 춤은 화장이나 패션이 그러하듯이,자기 도취적이고 자기 관능적인 의미가 있다.자기를 위해서,나를 위해서 춤을 추는 것이다.그러니까 현재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현모양처 따위의 전근대적이고 낡은 여성관이나 젊은 남성들을 사로잡은 이기주의적인 가부장제 윤리를 탈피한 지 꽤 되었다.예컨대 스스로 즐기면서도,정작 자기 여자 친구나 애인의 짙은 화장이나 노출 패션을 두려워하는 그 낡은 감각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근대적인 의미에서 자아를 아주 일상적인 차원에서 실현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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