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재테크 성공한 30대 김영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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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법 테두리내에서도 얼마든지 부동산투자로 재산을 늘릴 수 있습니다.정보수집에 어느 정도의 관심을 기울이느냐가 성공투자의 관건이지만요.” 투기가 아니고선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벌 수 없다는 심리가 팽배해 있는게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관념이다.그러나 평범한 직장인인 우방의 김영기(金英基.38)과장은 거의 무일푼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정당한 방법으로 10년만에 재산을 3억원대로 불린 부동산 성공투자의 대표적인 사람이다.

金씨의'재산만들기'는 정보수집을 토대로 가장 적절한 시기에 소액부터 투자,점차적으로 재산을 늘려가는 안정.신중 투자의 전형적인 모델로 꼽힌다.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ROTC장교를 제대한 87년6월말 金씨가 가진 재산이라고는 장교생활을 하면서 적금든 4백만원이 전부였다.

제대후 우방주택에 입사했으나 월급만으로는 도저히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초조감이 부동산투자에 눈을 돌리게 한 계기다.

우선 내집을 마련해 주거안정을 꾀하는게 1차 목표일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국민주택기금 지원을 받아짓는 소형 아파트 분양청약자격이 주어지는 청약저축에 가입했다.물론 평소 정보수집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휴일에는 부지런히 모델하우스와 현장을 쫓아다녔다.

부동산투자의 철칙인'다리품'을 파는데 인색하지 않았던 것이다.이렇게해서 90년10월 평촌신도시의 24평형 장기임대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원래 민영아파트 24평형을 분양받으려고 했으나 계약금등 목돈 8백만원을 구하지 못해 차선을 택한 것이다.임대주택의 경우 입주예정일이 3년뒤여서 당장 큰돈 들어갈 일이 없었다.

고대하던 내집마련.실제 소유권이 이전된 것은 아니지만 5년후엔 분양 우선권이 있어 자기집이나 다름없었다.보증금외에 집에 묶인 돈이 많지 않아 金씨는 투자용 부동산을 찾기 시작했다.

94년2월 과천주공 저층아파트 13평형에 눈이 갔다.

매매가는 5천3백만원인데 전세가가 3천만원으로 2천만원의 목돈만 있으며

괜찮은 아파트를 한채 살 수 있었기 때문.물론 재건축 움직임에 따른 가격

상승을 감안,은행에서 돈을 빌려 당장 매입했다.

2년뒤 되팔아 양도세등 세금내고 3천만원을 모았다.바로 이 목돈은 金씨의

부동산투자 종자돈 구실을 했다.

96년초 노리고 있던 수원 영통지구 아파트분양이 시작되면서 24평형짜리가

의외로 미분양되자 金씨는 즉각 계약했다.계약금 6백80만원만 있으면

국민주택기금을 빌려 얼마든지 자금융통이 가능한데 힘입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모시고 있던 어머니의 명의를 빌린 것이 꺼림칙했지만 부정한

방법은 아니었기에 용기를 얻었다.그리고는 같은 방법으로 인천 계산지구의

12평형 아파트도 분양받았다.

살고있는 장기임대아파트까지 분양전환되면 3채의 집을 소유하는 셈이다.

돈으로 따지면 2억8천만원대의 부동산이다.추가로 부담할 아파트중도금과

분양전환금을 빼더라도 2억1천만원이나 된다.

최근 분당의 50평형자리 오피스텔까지 분양받았기 때문에 金씨의

재산늘리기는 3억원대를 넘어간다.

金씨의 투자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무리하게 큰 물건에 손대지 않고

전세수요가 많은 작은 아파트를 매입해 자금부담을 덜고 투자가치를

점차적으로 높이는 방식이다.

또 항상 정보수집에 혈안이었고 휴일이면 견본주택이나 현장을 답사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한편으로는 철저한 자금계획을 세워나갔다.

이때문에 큰 돈은 벌지 못했지만 이상적이고도 정당한 방법으로 무일푼에서

재산 불리기에 성공한 것이다.

황성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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