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44>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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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호 16면

설 연휴 기간 스크린 골프장을 찾았다. 저녁식사를 마친 뒤 친지 한 명이 “골프나 한 게임 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말이 나오기 무섭게 서울 강남의 한 스크린 골프장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부킹난’은 일반 골프장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스크린 골프장은 만원이었다. “예약을 안 하셨다고요. 최소한 1시간30분 이상은 기다리셔야 하는데요.” 종업원의 말에 우리 일행은 어깨를 늘어뜨린 채 돌아서야 했다.

스크린 골프장 열풍

스크린 골프장이 붐빈다. 추운 겨울 날씨에다 경제 한파까지 겹치자 아마추어 골퍼들이 필드를 마다하고 스크린 골프장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계절적 요인에 ‘불황 특수(?)’가 더해지면서 전국의 스크린 골프장을 찾는 내장객 수는 전년 대비 30%가량 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런데 골프 담당기자 입장에선 스크린 골프 열풍을 어떻게 봐야 할지 당혹스럽다. 스크린 골프는 ‘골프’인가 아니면 ‘게임’인가. 미국에도 시뮬레이션 골프라는 게 있지만 찾는 이는 많지 않다. 10분만 달려가면 그림 같은 골프 코스가 펼쳐지는데 스크린 골프가 웬 말이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다르다. 2009년 1월 현재 전국의 스크린 골프장은 줄잡아 5000여 개. 지난 한 해 동안 67만 명이 무려 2400만 회나 스크린 골프를 즐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지난해 골프장을 찾은 인구는 140만 명, 연간 라운드 횟수는 2100만 회로 추산된다. 필드에서 골프를 즐긴 것보다 스크린 골프장에서 라운드한 횟수가 더 많다는 이야기다. 한 달에 한두 번 스크린 골프장을 찾는다는 40대 초반의 회사원 신용훈씨에게 “왜 스크린 골프를 좋아하느냐”고 물어봤다.

“우리나라에서 골프 치기는 너무 힘들어요. 무엇보다 돈이 너무 많이 듭니다. 18홀 라운드하는 데 30만원은 있어야 하잖아요. 시간도 너무 오래 걸려요. 수도권에서 골프를 즐기려면 오가는 시간을 포함해 최소한 10시간 이상은 잡아먹어요. 이래저래 가족들 눈치 보면서 골프 칠 바엔 차라리 스크린 골프가 훨씬 낫지요. 저는 친구들과 저녁 먹고 2차는 스크린 골프장으로 가요. 1인당 3만~4만원만 내면 18홀 라운드를 즐길 수 있거든요. 어떨 때는 스크린 골프장에서 만나 저녁 내기를 해요. 이런 경우엔 주로 9홀만 돌지요.”

신씨는 “그런데 실제 필드에 나간다면 이런 게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른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물어봐도 대답은 비슷했다. 이들은 대부분 스크린 골프의 단점보다 장점에 후한 점수를 줬다.

필자는 스크린 골프는 골프의 ‘보완재’는 될 수 있어도 절대로 ‘대체재’는 될 수 없다는 게 평소 생각이었다. 스크린 골프에서는 싱그러운 풀 향기를 맡을 수 없고, 옷깃을 날리게 하는 바람 소리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에 몰아닥치는 스크린 골프 열풍은 이런 생각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터무니없이 돈이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골프에 염증을 느끼는 이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골프장이 변하지 않는다면 스크린 골프가 실제 라운드의 대체 역할을 하지 못하란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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