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원자바오, 미국식 자본주의에 쓴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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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와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28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막한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기조연설에서 미국식 자본주의에 쓴소리를 쏟아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가 29일 보도했다. FT는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는 두 나라가 새롭게 재편될 경제 질서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의사를 선언한 것”이라며 “미국과 서구 경제가 러시아와 중국 정상으로부터 한 수 배우게 됐다”고 꼬집었다.

또 원 총리는 연설 후 공개 질의 시간에 “올해 중국 경제의 성장 목표는 8%”라며 “무리한 측면이 있지만 달성 가능한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세계 금융 위기가 중국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고, 대형 은행을 비롯한 은행 부문 개혁으로 중국 금융시스템이 안정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푸틴 총리는 기조연설에서 “1년 전 이 자리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 등) 미국 대표단은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안정적이며 경제 전망이 밝다’고 했지만, 월가의 자존심이던 투자은행들은 자신들이 25년간 벌어들인 수익을 초과하는 손실을 내고 자취를 감췄다”며 미국의 안일한 판단을 비웃었다. 그는 또 현재의 경제위기를 ‘거대한 폭풍’에 비유하면서 “위기의 조짐이 뚜렷했음에도 대다수 (월가) 사람들은 1달러든, 10억 달러든 자기 몫을 챙기기에 바빴다”고 비판했다.

원 총리도 미국을 겨냥한 듯한 뼈아픈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장기간 이어진 낮은 저축률과 지나친 소비로 규정되는 일부 국가의 ‘지속 불가능한 경제 성장 모델’과 ‘부적절한 거시경제 정책’이 세계 금융위기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또 “이윤 추구에 눈이 먼 금융기관의 과도한 팽창과 금융기관·신용평가사들의 자기 절제 부족도 경제위기를 불러왔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현재의 기축 통화 체제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푸틴 총리는 “외화보유액을 단일 통화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세계 경제에 위험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 총리도 “공정하고 정당하며, 건전하고 안정적인 새로운 경제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다보스포럼이 열리는 스위스의 샤찰프호텔에서 29일 밤(현지시간) 한국 경제의 건실함과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한국의 밤(Korea Night)’ 행사가 열렸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하고 SK그룹이 후원한 이 행사는 ‘미소를 통한 소통’이 주제다. 한국이 동아시아의 경제 중심국가이며 전통문화와 기술이 어우러진 매력 있는 나라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 기획됐다.

이날 행사에는 한승수 국무총리, 조석래 전경련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 한국 대표단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참석했고 외국 인사 350여 명이 초청됐다. 외국 인사로는 살리 베리샤 알바니아 총리,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 알 바다크 사우디아라비아 투자청장, 클라이먼트 벨쉬크 도이체방크 회장, 크리스토퍼 콜 골드먼삭스 회장, 레이먼드 맥대니얼 무디스 회장 등이 참석했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인사말에서 “한국 경제는 과거 외환위기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건실하다”며 “현 정부는 규제 완화와 노사관계 개선, 적극적인 대외개방 등 친기업적인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고 소개하며 적극적인 투자를 요청했다.

하현옥·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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