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97 임.단협 긴급중간점검 - 새 노동법 첫적용 노사 힘겨루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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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전국 사업장에서 올해 임.단협 교섭이 본격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올초 노동법 개정때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고용보장▶노조전임자 축소▶근로시간 조정▶노조위원장의 협약체결권 보장등 새 노동법의 주요 쟁점이 노사간 첨예한 의견 대립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용자측은 새로운 제도와 기준의 현장 적용을 시도하고 있는 반면 노조측은 이중 불만족스러운 부분에 대한 유보 또는 보장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서 새 노동법의 정착을 둘러싼 노사간 밀고 당기기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에따라 22일 현재 1백인 이상 사업장 5천7백54곳 가운데 36%인 2천69개 사업장만 임.단협이 타결돼 지난해 같은 기간의 타결률 50.1%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다.

특히 민주노총등 노동계는 임.단협 교섭이 지지부진한 것과 관련,7월초에 쟁의시기를 집중시켜 공동투쟁에 나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노동법 파동에 이은 또 한차례의 파문이 우려된다.

중앙일보 취재팀이 전국의 주요 사업장의 임.단협 현장을 긴급점검,노사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을 쟁점별로 정리해 본다. 편집자

◇고용보장=정리해고제 도입에 따른 고용 불안은 인사및 징계위원회 노사 동수구성(한국통신.서울지하철공사.서울대병원.대우중공업 기계부문),고용안정위원회 설치(만도기계)등 노조측의 다양한 형태의 고용보장책 요구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정공 울산공장.현대자동차등은 특정사업부분의 양도나 인력재배치에 따른 근로자 불안해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현대자동차는 최근 노사간 고용안정협정서를 체결,별도의 합의로 근로자의 고용불안을 해소했다.태광산업도 생산라인 일부중단에 따른 인력재배치 문제가 단협의 이슈가 되고 있다.

부산교통공단은 2기지하철 개통에 따른 직제개편,기아자동차는 서비스및 판매담당 별도 법인 설립에 따른 근로자의 직장이동이 노사간 쟁점으로 등장했다.

◇노조 전임자 축소=2002년부터 회사측의 급여 지급이 전면금지되는 노조 전임자 문제는 이번 임.단협에서 노사양측이 가장 민감하게 제기하는 쟁점중 하나. 공공기업.민간기업을 불문하고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전임자 수를 놓고 노사간 줄다리가 한창이다.

한국조폐공사의 경우 이 문제가 불거져 시한부 파업 사태를 초래,노사간 대치가 장기화되고 있다.

더구나 정부투자기관등 공공부문 사업장의 경우 95년12월 재정경제원이 내린 노조전임자 축소지침이 새 노동법과 맞물려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재정경제원과 노동부는 이 지침을 새 노동법에 맞게 수정.보완하는 방안을 강구중이다.

◇근로시간=노동법 개정때 논란을 빚었던 1개월 단위의 변형근로제가 노사합의로 도입돼 시행중인 사업장은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격주휴무제등 2주단위 변형근로제 정도가 고작이다.다만 단협에서 부산교통공단등 상당수의 노조가 본격적인 변형근로제 실시에 대비해 근로시간의 단축을 요구하고 나서 주목된다.근로시간을 주당 44시간 또는 42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할 경우 기준시간이 줄어들게 돼 변형근로제가 실시될 때 근로자가 유리할 수 있다.

◇노조위원장의 협약체결권=새 법에서 노조위원장은 당연히 교섭권과 협약체결권을 가지는 것으로 명문화 됐으나 일부 노조가 과거의 예를 들어 조합원 인준투표를 고집함으로써 교섭진행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고 있다.

인준투표를 고집하는 노조에 따르면 노조위원장은 노조안을 가지고 사용자와 협상에 나서 의견절충을 시도한후 합의 초안을 노조총회의 결의에 부쳐 그 결과에 따라 협약체결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 사용자측은 그러나 새 법의 규정에 맞게 노조가 위원장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해야 하며 노조 주장대로 총회 투표 결과에 결론이 좌우되는 2중의 협상에는 임할 수 없다고 맞선다.

효성T&C가 이 문제로 교섭이 답보상태에 있으며 현대자동차.태광산업도 적지 않은 갈등을 겪고 있다.아시아자동차노조는 위원장이 직권으로 협약을 체결하면 자동해임된다는 내부규약을 마련하기도 했다.

◇기타=노동법 파업사태로 빚어진 손실임금의 보전,고소.고발.징계 철회 요구등 올 임.단협은 여전히 노동법 파동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중공업.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정공 울산및 창원공장등 지난번 사태때 주동적 역할을 한 노조를 중심으로 이의 해결을 임.단협 타결의 선결과제로 요구하고 있다.

이와함께 사용자측에서 제기하고 나선 조합원 범위 축소도 논란이 되고 있으며 봇물이 터진 3자 개입 신고는 이미 노사협상의 새로운 양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또 상급단체 복수노조의 합법화로 전국공공서비스노조연맹등 9개 상급노조가 새로 설립됐으나 병원노련이나 전문노련을 제외한 대부분의 노조에선 교섭권을 상급단체에 위임하지 않고 개별노조별로 교섭에 임하고 있다.

한편 갑을방적등 4백여개 업체가 임금동결을 선언하고 한일합섬등 1백80여개 업체 노조는 회사측에 위임,임금무교섭 타결을 선언하는등 임금교섭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새 노동법은 그 시험대가 되고 있는 임.단협을 어떻게 마무리 짓는가에 따라 습관처럼 돼 버린 춘투(春鬪)를 반복하느냐,아니면 국가경쟁력 강화와 새 노사관계의 정립이란 법 개정의 이상을 현장에 뿌리내리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전국종합.정리=김진원 기자

<사진설명>

전국 주요 사업장의 임.단협 교섭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노조전임자 수 감축 문제를 놓고 공사측과 맞붙은 한국조폐공사 노조원들이 19일 충북 옥천창 정문 앞에서 시한부 파업을 벌이고 있다. 옥천=이운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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