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두려움의 흔적들' 조르주 뒤비 著 -과거를 알면 미래가 불안하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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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21세기를 코앞에 둔 시점에 일종의 불안감이 팽배하다.1백년전 20세기를 앞두고 과학발전을 낙관했던 것과는 정반대 분위기다.첨단기술에 가려진 인간소외,가속되는 실업률,무너지는 가치관등으로 정체성(正體性)을 확인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프랑스 역사학자 조르주 뒤비의'서기 1000년과 서기 2000년,그 두려움의 흔적들'(동문선刊)과 영국 소설가 니컬러스 모즐리의'희망의 괴물들'(전3권.겨례)은 이처럼 혼돈스런 현실에서 스스로를 차분하게 반추해보는 계기를 제공한다.각각 대담과 소설로 장르는 달라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경계하고 시대의 실체를 직시하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비슷하다.

뒤비는 이렇게 질문한다.“미래에 대한 확신감을 불어넣어주며,현재의 삶에서 봉착하는 어려움에 현명하게 대처하겠다는 목적이 아니면 무엇 때문에 역사를 기술하는가.” 모즐리도 첫장부터 작품방향을 암시한다.“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환경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역경을 오히려 달갑게 여길만큼'괴물'이 돼야 하지 않을까.”두 책 모두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종합적 사고를 바탕에 깔고 있다.

'…흔적들'은 서기 1000년 무렵과 오늘날 사회에 팽배한 두려움을 비교한다.궁핍.타인과의 관계.전염병.폭력.사후세계등 5개의 소주제로 나눠 양(兩)시기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모두가 가난했고 공동체 의식이 살아있던 중세인들과 달리 현대인들은 빈부격차와 개인주의 때문에 빈곤에 대해 민감해졌다는 분석이다.사후세계에 대한 확신을 잃은 탓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현대인들이 더 높다.

한편 저자는 비록 성격은 다르지만 예전 사람들도 현대인 만큼이나 불안에

떨었다는 사실을 하나하나 증명하고 있다.특히 저자는“과학과 기술로

인간이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해도 자연 앞에선 무력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며 현대인들의 겸손한 자세를 주문하고 있다.

'희망의…'는 20세기 현대문화사의 궤적을 추적한 소설이다.기본틀은 영국

출신의 물리학자 맥스와 독일 출신의 생물학자 엘레노어의 평생에 걸친

사랑.20년대 좌우대립이 극심했던 독일 베를린의 정치상황을 시작으로

파시즘.러시아 대숙청.스페인 내전.제2차 세계대전.원자폭탄 투하등을 거쳐

베트남전,최근의 녹색운동까지 굵직굵직한 사건이 배경으로

등장한다.전체주의와 이념대립으로 얼룩졌던 20세기의 상흔(傷痕)은 물론 그

체제를 견뎌내야 했던 사람들의 불안.공포가 그려지고 있다.주인공들은 시대

변천을 온몸으로 겪으며 자신의 위치를 점검해 나간다.기나긴 편력 끝에 결국

세계는 하나로 연결된다는 희망적 결론에 도달한다.20세기는 혼란의

시대였지만 그 속에는 인류를 하나로 묶는 패턴이 눈에 보이지 않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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