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마음 감춘 김영삼 대통령 중립 못박지않고 비방 자제 지시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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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미국.멕시코 방문을 앞두고 19일 신한국당의 민관식(閔寬植)경선관리위원장과 박관용(朴寬用)사무총장을 불렀지만 예상대로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았다.

대선주자 누구에게'김심'(金心)이 실렸는지,진짜 중립인지는 불투명한 채 남겨두었다.다만 감독관의 입장에서 분파 행위나 상호 비방을 경고하는 네가지의 원론적 지침만 내렸다.

金대통령의 지적대로 신한국당 경선은 이회창(李會昌)대표의 사퇴논란으로 촉발된 과열로 인해 단합을 해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원색적 비난이 나오고 범민주계 모임인 정발협과 민정계 결사체인 나라회 사이에 갈등이 커지고 있다.

분파행위 자제 주문은“주자들간 앙금이 깊어지면 12월 본선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강인섭(姜仁燮)정무수석은 설명했다.

그러나 金대통령의 이런 언급이 제대로 먹힐지는 미지수다.우선 金대통령은 분파 행동을 언급하면서도 대상인 정발협과 나라회를 딱부러지게 지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정발협에 대한 판단은 “특정주자를 지지하지 않을 것”(姜수석)이며 현재까지의 행동이 당의 기반을 깰 정도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정발협측은“우리는 분파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이런 경고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 눈치다.“7월초 지지후보를 정하겠다”는 방침을 변경하지 않은 상태며 李대표에 대한 압박을 철회하지 않을 것같다.

친(親) 李대표 성향이 강한 나라회는 겉으로는 자제하는 모습이다.대변인을 맡은 함종한(咸鍾漢)의원은“지지후보를 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내부의 기류는 다르다.“정발협이 후보선택을 강행하면 우리도 할 수밖에 없다”고 핵심의원들은 주장한다.

李대표측은 19일 경남위원장(23명중 15명)모임과 20일 충남위원장 지지 모임을 일단 취소,한발 후퇴했다. 그렇지만 李대표측은“위원장들이 모여 지지 후보를 정하는 것은 자유로운 정치행위”라는 논리를 고수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金대통령이 정발협.나라회의 해체지시를 하면 될텐데,그렇지 않은 것은 교통정리의 시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같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경선 판도가 복잡해 金대통령이 구체적 언급을 하면 누구를 민다는 오해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金대통령의 장악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명확한 지침을 줬다가 주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체면만 깎일 수 있다는 측면도 고려된 듯하다.

金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언질을 줄법한“경선중립”도 생략했다.이는'김심'을 모호한 상태로 유지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그래야만 경선에서 역할 공간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게 아닌가 여겨진다.

물론 姜수석은“그동안 여러번 언급한 것”이라고 했으나 金대통령의'중립'입장은 비공식 모임뒤 전언으로만 알려졌을 뿐이다.

정발협과 나라회는 21일께 공식접촉을 갖고 金대통령의 지침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타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金대통령의 국내 부재(22~30일)중 세몰이식 움직임을 자제하자는 여론이 퍼지겠지만 이는 한시적인 분위기에 그칠 것이라는게 대체적 인식이다. 박보균.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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