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우리時 연구 김재홍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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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뒤척이노라면 새삼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이 바로'나'가 아닌가 깨닫게 된다.그런데도 세상사에 매달려 정처없이 사노라면'나'는 잃어버리고 허깨비만 허둥대는 느낌이다.

바로 그렇다! 나를 표현하는 근본 방법이자 내 존재의 상징인 언어로서 국어도 시달릴대로 시달려 기진맥진해 있는 모습이다.자기의 혼을 담는 그릇으로서 말과 그 말의 그릇으로서 한글을 만들어 놓고서도 오랫동안 우리는 그것을 홀대해왔다.일제강점의 세월에서도 우리말을 갈고 닦는 일은 억압당하고 마침내 그 목숨마저 빼앗길 위기에 놓여있었다.겨우 되찾은 조국 하늘에서도 국어의 운명은 순탄치 못한 것이 사실이다.

각종 외국어.외래어의 범람은 물론 국적불명의 천박한 비어.속어가 판치고 있다.이러한 우리 국어의 혼란상.타락상은 바로 오늘날'나'를 잃고 '우리'를 버리고 살아가는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일제하에서 우리말로 시를 쓴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은 독립운동을 하는 일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말은 바로 생존권과 주권,나아가 민족혼의 상징이기 때문이다.그런 뜻에서 내가 지난 30여년간 우리시를 공부해온 것은 바로 우리말을 익혀온 것이고 우리 정신사를 탐구해온 과정이라고 하겠다.그것은 바로 진정한 나를 찾는 일이고 바르게 세상을 살아가는 길로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학교 연구실과 강의실에 매여 있으면서도 거리에 나아가'시와 시학'을 펴내고 만해운동을 하고 있는 것도 바로 나를 찾기 위한 노력이고,나아가 우리혼을 찾으려는 안간힘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그렇다! 우리 말을 살리고 갈고 닦는 일은 그대로 내가 참되게 사는 일이고,민족혼을 지켜나가는 일임에 분명하다.이 점에서 우리 모두는 제2의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뜻으로 우리국어 살리기에 떨쳐일어서야만 한다.그것은 시인들만의 일이 아니라 민족구성원 모두의 본분이고 사명이다.그래서 우리가 세계 1등국민이 되고,최고의 문화민족으로 발돋움해 나가야만 한다.이번 나의'한국현대시 시어사전'은 그러한 분발을 촉구하는 작은 각서라고 할 수 있으리라.

<사진설명>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지킨다는 각오로 사전을 펴낸 문학평론가 김재홍(경희대교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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