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 차분하고 실속형 춘제 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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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근교에 사는 왕진화(52)씨는 올해 춘제(春節·설날) 당일에 가족과 함께 집 앞 공터에서 폭죽을 터뜨렸다. 집안의 액운을 몰아내고 길한 기운을 불러들이기 위해서였다. 왕씨는 그러나 폭죽 구입비용을 지난해의 절반 정도로 줄였다.왕씨는 "경제 위기 얘기가 많아 올해는 폭죽을 200위안(약 4만원)어치만 샀다"고 말했다.

1년전만 해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들떠 있던 중국인들은 음력 정월 대보름이 될 때까지 쉴새없이 폭죽을 터뜨렸다. 집에서 자다가도 벌떡벌떡 놀라 일어날 정도였다.

그러나 올해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다. 섣달 그뭄날과 초하룻날에는 폭죽 소리가 엇비슷하게 요란했지만 초이틀부터는 폭죽 사용량이 대폭 줄었다.

실속파 중국인들은 돈 안드는 TV 시청 등으로 일주일간의 춘제 연휴를 보내고 있다. 땅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디탄(地壇)을 비롯해 전통 사찰과 사당 부근에서 열리는 야시장 성격의 먀오후이(廟會) 를 둘러보는 사람들은 지난해보다 대폭 늘어났다. 중국중앙방송(CCTV)이 섣달그믐날에 방송한 280분짜리 춘완(春晩)특집 연예오락 프로그램은 조사 대상의 95.6%가 시청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재방송 시청률도 높다.
반면 춘제에 가족이나 친구들이 직접 만나 요란하게 한턱 내던 풍경은 크게 줄었다. 대신 간단하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새해 인사를 나누는 이들이 많아졌다. 중국 3대 이동통신사의 문자메시지 발송 건수는 춘제 연휴 기간에 180억건으로 지난해보다 10억건이 늘어났다.
광둥성의 진양왕(金羊網)의 인터넷 설문조사에 따르면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부모님 용돈과 자녀 세뱃돈 지출도 대폭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20%는 "아예 용돈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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