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있는요리>양평 김명선씨의 '호박닭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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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드라이브 삼아 놀러온 학교 후배들이 이걸 먹어보더니 신기하다며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더군요.이 속에 닭 한마리가 들어 있다는게 안 믿어지죠?” 나지막한 푸른 산들이 그림같이 둘러싼 강둑길을 한참 달려 도착한 양평의 한 전원카페.오븐서 막 꺼낸 호박을 직접 들고 나타난 주인 김명선(金明渲.46.경기도양평군서종면문호리)씨의 낭랑한 목소리엔 짙푸른 원피스의 하얀 물방울무늬같은 생기가 가득 차있다.

호박닭구이는 金씨가 지난해 11월께 이곳에 카페를 개업하면서 생음악이나 토종닭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다른 식당들과 차별화를 위해 개발한 식사메뉴. 사실 처음 힌트를 준 것은 이 동네 어느 노총각이었다.이곳만 해도 시골이라고 서른을 훨씬 넘긴 노총각들이 많았다.金씨 카페엔 서울서 온 젊은 여종업원이 2명 있었는데 그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동네 노총각들은 괜히 이것저것 도와주겠다며 들락거리곤 했다.

그중 한사람이 어느날 카페에서 벽난로를 보더니 별미를 만들어주겠다며 커다란 늙은 호박 속을 파내고 토종닭을 토막쳐 넣더니 숯불에 구워주었다.타들어간 호박에서 갓 꺼낸 숯불구이 닭고기는 호박내를 물씬 풍기며 金씨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남편도 재미있게 느껴졌던지 카페에서 식사나 안주로 내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그가 당장 실행에 옮긴 것은 물론이다.

몇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몸에 좋은 호박도 먹을 수 있고 요리모양도 살도록 金씨가 개발한 것이 단호박과 오븐을 이용하는 것. 친지들을 불러 시식을 하는데 모두들 동그란 호박모양에 먼저 신기해 하고,호박을 갈라 닭과 함께 먹어보곤 그 맛에 탄성을 질렀다.노란 호박속은 단고구마처럼 입에 살살 녹았고 찜이 된 닭고기도 토종닭 특유의 쫄깃함이 살아있었다.

“대부분 저희랑 알던 분들이 찾아오시기 때문에 음식 하나도 더 정성을 쏟게 돼요.이곳의 토속적인 재료로 만든 색다른 걸 대접하고 싶지요.” 의대생인 큰딸에 이어 아들도 대학에 진학하면서 과감히 서울을 떠나오긴 했지만,산을 좋아하는 남편은 한달에 2주씩은 집을 비우기 때문에 그에게 손님들은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다.조금만 한가해지면 직접 중국차를 대접해주며 한두시간씩 말벗이 되기도 한다.

“서울서 아등바등 살던 때가 옛날 같아요.물론 여기서도 한가한 것만은 아녜요.시골집이라 청소하기도 쉽지 않고 카페에서 쓰는 김치까지도 이젠 제가 직접 담가야 하니까요.하지만 경치좋고 공기 맑은 데서 살다보니 마음에 여유가 생기나봐요.” 어쩌다 한번 하는 서울나들이도 힘들게 느껴진다는 金씨.기자와의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끓여준 국화차가 서울오는 길 내내 향기를 입안 가득 남기고 있었다. 김정수 기자

호박닭구이 만드는 법 ▶재료=단호박(大)1개,중닭 1마리,양념(버터 1큰술,소금 1/2큰술,은행 7알,마늘 2알,매운 풋고추 3개,양파 1/2개,후추 약간),소금,후추,깨소금 약간씩 ▶조리법=①닭은 먹기좋은 크기로 토막내 놓는다.②단호박은 깨끗이 씻은후 윗부분에 칼집을 내 뚜껑처럼 따낸다.③호박 속을 깨끗이 파내고,뚜껑이 되는 호박도 살부분을 2.5~3㎝정도 두께만 남기고 베어낸다.④은행과 마늘은 껍질을 까고 풋고추와 양파는 통째로 손질해 놓는다.⑤뚜껑에서 베어낸 호박살과 양념을 모두 넣고 약한 불에 올려 호박살이 물러져 양념에 고루 섞어지게 만든다.물기가 부족하면 물 50㏄정도를 넣어 끓인다.⑥양념이 고루 밸 수 있도록 ①과 ⑤를 잘 섞어 냄비에 넣고 닭을 완전히 익힌다.⑦파낸 호박 안에 ⑥에서 닭만 건져 차곡차곡 넣고 뚜껑을 닫는다.⑧2백50도의 오븐에 1시간10분~1시간20분 정도 굽는다.⑨먹기 바로 직전 호박 뚜껑을 열고 몸통부분은 갈라 꽃잎처럼 펴놓으면 모양도 예쁘고 먹기좋다.⑩닭은 소금.후추.깨소금을 섞어 만든 양념소금을 만들어 찍어 먹도록 한다.

<사진설명>

닭 한마리가 숨겨진 호박 뚜껑을 열어보이는 김명선씨.환한 미소속에 전원생활의 여유가 담겨있다. 주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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