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재현 시시각각

환경의 위기 vs 환경단체의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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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비전문가는 답답하다. 따지고 보면 전문가 중에도 허깨비가 많지만, 그 문제는 논외로 하자. 한동안 줄기세포 공부를 안 하면 영락없이 골프광들의 술자리에 낀 골프 문외한 신세였다. 그러더니 어느새 프리온, vCJD, 멜라민, 서브프라임 모기지 같은 용어가 차례로 등장해 두통을 불러왔다.

내가 요즘 비전문가 처지를 실감하는 분야는 환경이다. 지구가 더워지고 있고, 생태계가 나날이 지리멸렬이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몇년 전에 『회의적 환경주의자』라는 책이 나왔을 때는 지구가 아직은 괜찮은가 보다라는 생각도 했었다. 덴마크의 통계학자(비외른 룸보르)가 구체적인 통계수치를 들며 “환경위기는 과장된 주장”이라고 역설한 책이었다. 그러나 돌아가는 추세를 보니 역시 지구는 위험하다는 쪽이 옳은 듯하다. 아니, 옳고 그르고 따지기 전에 기후변화협약 같은 국제적 압력 때문에라도 우리나라는 환경위기를 인정할 수밖에 없지 싶다. 마침 정부도 녹색성장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지 않은가.

 한국은 물론 미국·유럽·일본도 떨쳐 나섰다는 녹색성장, 지속 가능한 성장에 대해 최근 나온 책 『녹색성장의 유혹』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소리”라고 비웃는다. 에너지 효율이 높아질수록 소비도 따라 늘어나 생태계가 더 파괴된다는 ‘제번스 패러독스(Jevons Paradox)’를 들어 “성장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 스탠 콕스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도 녹색 거품 속으로 뛰어들어 저이산화탄소 녹색성장을 이루기 위한 일련의 계획을 발표했다. 제번스 패러독스를 입증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아무리 남의 나라지만 악담을 너무 함부로 해댄다.

듣기에 나쁘지 않은 소리도 있다. 『20세기 환경의 역사』(J R 맥닐 지음)라는 신간은 20세기가 초래한 환경재앙을 개탄하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대기·하천 오염이라는 막대한 대가를 치렀지만, 부유해진 덕분에 생태적 혼란을 극복하는 데 유리해진 나라’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외국 전문가의 상반된 주장을 듣다 보면 더 헷갈리고 답답해진다. 국내 전문가들은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정부는 두말할 것도 없이 장밋빛 전망 일색이다. 부처마다 ‘녹색’ ‘그린’으로 정책을 치장했다. 산림청 같은 곳은 아예 홈페이지를 ‘Green 정책’ ‘Green 지식’ ‘Green 정보’ ‘Green 민원’ ‘Green 소식’이라는 제목으로 도배해 놓았다. 관련 기업들도 ‘그린’에서 지폐 냄새를 맡고 뛰어들 태세다. 그러나 내가 아쉬운 것은 환경운동 분야의 경험 많은 전문가들이 너무 잠잠하다는 점이다.

 조용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을 것이다. 회원이 8만 명이나 되는 국내 최대의 환경단체 ‘환경운동연합’은 지금 근신 중이다. ‘환경연합 거듭나기 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내부 쇄신 작업에 바쁘다고 한다. 이미 정부·기업으로부터 지원받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겨우 평균 130만원이던 직원 월급도 절반으로 잘랐다. 최열 전 대표가 입건되고 일부 직원이 파렴치범으로 세간의 빈축을 산 후폭풍이다. 사실 나는 방만한 운영이나 비리 의혹보다는, 새만금·방폐장에서 매향리·대추리까지 생태코드와 반미코드를 혼동하고, 낙선운동이니 탄핵저지니 하며 정치적 편향성을 마구 뿜어낸 것이 우리나라 환경운동가·환경단체의 위기를 부른 근본적 잘못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한쪽 전문가의 얘기만 들어야 하나. 그린벨트가 여기저기 풀렸다는데, 국립공원 개발이 허용되고 허가권이 지자체로 넘어간다는데, 명산마다 케이블카로 거미줄을 친다는데, 이럴 때 다른 목소리도 나와야 녹색성장인지 녹색포장인지 비전문가도 따져볼 수 있지 않을까. 환경운동단체의 위기가 환경의 위기로 이어져선 곤란하다. 자동차에 액셀러레이터가 있으면 브레이크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