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명퇴가장의 재기수기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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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교수에서 목수로-. 7년째 호황기를 맞은 미국에서 80년대 혹독했던 대규모 감원의 기억을 생생히 돌이켜 주는 전직 교수의 회고록이 출간돼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메인주(州) 스카보로의 목수 돈 스나이더(47)가 지난달 말 펴낸'벼랑 끝 걷기'(원제 The Cliff Walk)는'중년 실업'의 원조격인 미국에서 실직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당사자가 당시의 사회상황을 그려낸 최초의 '아버지 이야기'다.

뉴욕주의 사립대학 콜게이트 칼리지 영어교수였던 스나이더는 41세였던 91년에 실직,2년간 93번의 채용거절 통보를 받은 후 여섯식구의 가장으로 집을 팔고 술.구호식품으로 연명하는 신세까지 갔었다.결국 공사판 막노동에서 시작,숙련된 목수로 새 삶을 찾았으며 이 기구한 인생기행이 이 책의 줄거리다.

미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 지난 79년 이후 지난해 초까지 해고당한 사람의 수는 무려 4천3백만명. 같은 기간 7천만개의 새 일자리가 생겨 사회 전체로는 오히려 2천7백만명의 고용이 늘었으나 대부분은 스나이더처럼 큰 고통 끝에 전보다 못한 직업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스나이더가 기록한 미국 사회의 적응과정은 그같은 경제통계가 아닌 생생한 체험이라는 점에서 더 주목을 끈다.

워싱턴의 영향력있는 공영방송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에 최근 출연한 스나이더는“교수였다는 오만을 버리고 노동자들의 삶 속에서 건강한 존엄성과 과거의 잘못을 깨닫고 고백한 것이 나의 책”이라며“목수로서 한시간에 15달러를 받으며 집에 페인트 칠하듯 나의 삶을 색칠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스나이더의 책을 출판한 리틀 브라운사측은“판매부수와 저작료는 밝힐 수 없지만 책은 최근의 회고록 붐을 타고 아주 잘 팔리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외부와의 접촉을 가급적 피하고 있는 스나이더는 이제 목수 일을 그만둘지 모르지만 그와같은 미국인들의 삶의 방식이 미국 경쟁력 회복의 토대를 쌓는데 기여했음은 분명하다. 워싱턴=김수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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