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깃대종 살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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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속세와 인연을 끝는다 해서 단속사(斷俗寺)라 했다.신라시대 세워졌다가 정유재란(1597년)때 불타버려 지금은 두 탑만이 경남산청군단성면에 남아 있다.유월 유두날 단속사 계곡으로 부녀자들이 물맞이 놀이를 갔다.누군가가 따온 버섯국을 끓여 먹은 다음부터 웃음이 그치지 않는 병에 걸렸다.이를 본 노승(老僧)이 단풍나무 고목에 돋아난 야생버섯 소심을 먹은 탓이라고 했다.노승이 약을 달여 먹이자 웃음은 씻은듯 그쳤다.부녀자들이 무슨 영약이냐고 물었다.비온 뒤 산골 발자국에 고인 흙탕물을 달인 것이라고 노승이 답했다.“이 산에서 병을 얻었다면 그 병을 고치는 약도 반드시 이 산 어딘가에 있다”는게 노승의 가르침이었다.'대동야승'(大東野乘)에 나오는 이야기다.

얻은 병은 이 땅 어딘가에 약이 있다는게 우리 한의학의 기본 철학이다.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나는 초목이 약재의 기본인 본초(本草)가 된다.현대의약도 다를게 없다.말라리아 특효약인 키니네도 말라리아 발병지역의 약초에서 추출한 것이다.최근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 밀이 노화방지 기능에 특별한 효능을 갖는다고 했다.그 흔하던 밀마저 이젠 구경하기 힘들다.

대략 3천만종이나 되는 생물이 살고 있다.그중에서도 특정지역이나 생물계 안에서 대표적이며 상징적인 생물종을 선택해 깃대처럼 내세우자는 뜻에서 이를 깃대종(flagship species)이라 부른다.유엔환경계획(UNEP)이 생태계 회복의 개척자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백두산의 호랑이,설악산의 반달곰,강원도 홍천의 열목어,태화강의 각시붕어,무주 남대천의 반딧불이,여수 오동도의 동백나무,홍도의 풍란 등이 바로 깃대종이다.

중앙일보가 배달녹색연합과 함께 벌이는'깃대종 살리기'운동이 2년째다.지역마다 새롭게 많은 깃대종을 만들어 적극 참여하고 있다.의왕시는 대대적인 올빼미 보호운동에 나섰고,김천시는 은행나무를,민물고기보존협회는 임진강 황복 되살리기를,괴산에선 미선나무 보호를,울산에선 각시붕어 지키기운동을 벌이는데 관과 민이 나섰다.내 마을 내 도시를 지키기 위해 올빼미 한마리,풀 한포기라도 소중히 지켜보자는게 이 운동의 참뜻이다.내 땅에서 얻은 병은 내 땅의 본초로 고친다는 한의학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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