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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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옥정은 방송국에서 끌려나가 경찰에 인계되었고,마침 이우풍와 로즈 버드단원들을 조사하고 있던 경찰에서는 비록 정신이상이긴 하지만 옥정을 통하여 살인사건에 관한 중요한 단서를 포착할 수 있었다.

옥정은 그동안 청량리 일대를 떠돌아다니다가 신설동 방향으로 걸어 나와 로터리 근방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는데,어느 점치는 무당이 옥정이를 보더니 신이 내렸다고 하면서 자기 점집으로 데려가 목욕도 시키고 옷도 갈아입히고 먹을 것도 주었다.옥정이 점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니키 마우마우단 이야기도 나오고 해서 혼자 점집을 빠져나와 사람들에게 물어가면서 버스를 타고 방송국이 있는 여의도까지 온 것이었다.무당이 굿을 좀 해준 덕분인지 옥정은 이전보다는 정신이 많이 좋아진 편이었다.

옥정을 신문하느라 머리가 어지러워진 형사들이 이우풍을 거의 고문에 가깝게 위협하여 결국 살인사건에 관한 자백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그리고 결정적인 증거물로 의경들에게서 빼앗은 의경복장을 비트의 정화조 안에서 발견하였다.

우풍은 비록 옥정 아버지를 직접 살해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대명과 함께 그 시체를 지하철 공사현장 붕괴사고 사망자인 것처럼 가장하여 병원 응급실에 유기(遺棄)하는 일에 가담하였으므로,현장검증을 통하여 그 모든 과정을 상세하게 재연하여야만 하였다.

니키 마우마우단의 살인사건과 대형사고를 이용한 시체 유기사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이번 기회에 불량 청소년 범죄조직들을 뿌리뽑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사회 전반적으로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자 우풍은 특수강도 강간미수및 특수강도 강간치상죄를 지었다는 혐의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게 되었다.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관들은 살인을 범하고 시체까지 유기한 자들이 강도 강간쯤은 얼마든지 범하지 않으랴 하는 심증(心證)을 가지고 우풍을 신문하기 일쑤였다.

큰 문장을 이룬다는 뜻으로 태문(太文)이라는 필명을 가지고 있는 우풍의 아버지 이태수는 강원도 정선 골짜기 어느 너와집에서 텔레비전을 통하여 우풍의 소식을 접하고는 서울로 달려와 집필도 중단한 채 유명한 변호사를 구하여 우풍을 변호하는 일에 앞장섰다.이태수,아니 이태문의 문명(文名)이 있는지라 일반인들도 재판과정에서 이우풍의 범죄가 어떤 판결을 받느냐,지대한 관심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태수는 변호사와 함께 우풍을 면회할 적마다 9월30일 12시쯤에 어디에 있었는가 기억을 잘 해보라고 다그치기 일쑤였다.태수의 생각에는,우풍이 특수강도 강간미수와 같은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이 판명나야 살인사건과 시체 유기 사건 심리에서 정상참작의 여지가 그래도 있을 것이라 여겨졌던 것이었다.

글=조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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