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김현철씨 70억 헌납 시키기까지 "고집하면 아버지에 큰짐" 설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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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현철(金賢哲)씨가 92년 대선때 사용하고 남은 70억원을'국가 또는 사회에 헌납하겠다'는 각서를 쓴데는 검찰의 설득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비록 법적으로 문제없다 하더라도 나라 전체가 대선자금으로 시끄러운 마당에 현철씨가 대선자금 잉여분을 개인재산으로 계속 갖고 있다면 국민감정이 용납하겠느냐”고 배경을 설명했다. 현철씨 비리사건 수사팀은 수사초기 이미 현철씨와 주변 인물들의 은행계좌 압수수색등을 통해 92년 대선때 김영삼(金泳三)후보의 사조직이었던'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운용자금중 남은 1백20억원이 ㈜심우 대표 박태중(朴泰重)씨를 통해 현철씨에게 넘어간 사실을 확인했다.

수사팀의 고민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한다.92년 대선자금 전체의 출처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검찰 내부 방침이 정해진데다 현철씨가 대선자금을 남겨 몰래 관리해왔더라도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법률적 판단 때문이었다.

게다가 92년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를 요구하는 야당과 언론의 요구도 커다란 부담이었다는게 검찰의 설명이다.

그래서 수사팀은 비록 대선자금에 대한 전면적 수사는 하지 않더라도 이미 드러난 대선자금 잉여분은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리해 수뇌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심재륜(沈在淪)중수부장과 이훈규(李勳圭)3과장등은 김기수(金起秀)검찰총장등 수뇌부에 “한보1차 수사때 검찰이 언론으로부터 축소.은폐의혹을 많이 받았는데 이번에 다시 대선자금 잉여분을 공개하지 않을경우 수사실적은 묻혀버린채 은폐시비에 말려들 것”이라고 건의했다는 것이다.

우여곡절끝에 이같은 방침을 세운 수사팀은 구속된 현철씨를 상대로 5월말부터“이 돈을 계속 당신이 소유하면 아버지인 金대통령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될것”이라며 설득에 나섰다.

이런 와중에 중앙일보는 청와대 관계자의 증언을 통해 검찰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현철씨가 비자금 포기각서를 제출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단독으로 취재해 6월1일자(일부지방 6월2일자)1면에 '남은 대선자금은 국가에 헌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기사를 보도했다.

구치소에서 중앙일보를 읽은 현철씨는 다음날 검찰청사로 소환돼 조사를 받으면서“누가 이같은 내용을 언론에 흘렸느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으나 결국 수사팀의 설득을 받아들여 백지에 자필로 각서를 쓰고 손도장을 찍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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