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재건 사업 주도권 갈등 ‘새로운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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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가 휴전을 선언한 가운데 가자지구 재건을 둘러싸고 미묘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자치정부(PA)·하마스가 서로 재건사업의 주도권을 쥐겠다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고 20일 AP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가자지구 복구에서 핵심 역할을 해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다. 하마스 측에 따르면 주택과 공공시설 파괴 등에 따른 가자지구 피해 규모는 총 17억 달러에 달한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있어 복구 물자들이 이 지역으로 들어가는 데 실질적인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미 유엔과 다른 구호단체들에 가자지구로 시급히 들어갈 물자와 장비 목록을 요청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가자지구를 하마스에 내줬던 팔레스타인자치정부도 재건사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살렘 파야드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총리는 “국제사회는 하마스가 통제하는 가자지구에 직접 지원금을 줘서는 안 된다”며 “팔레스타인의 단결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도 하마스의 입지를 강화하는 직접 지원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자지구 재건을 위해 지원을 약속한 대부분의 아랍국은 지원금을 팔레스타인자치정부를 통해 전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카타르는 가자지구에 직접 지원금을 건네줄 의사를 비쳐 이스라엘·팔레스타인자치정부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은 가자지구에서 하마스가 물러나기 전에는 재건사업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베니타 페레로발드너 EU 대외관계 담당 집행위원은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이 이끄는 파타당이 가자지구로 복귀할 경우에만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가자지구를 방문해 이스라엘군 폭격으로 파괴된 유엔 관련 시설들을 둘러보고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반 총장은 “이르면 2~3일 안에 유엔 사무차장 등이 포함된 실사팀을 현지로 보내 긴급구호를 위한 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아랍국들은 이번 가자 분쟁에서 이스라엘이 방사선 물질인 열화우라늄을 사용했다고 주장하며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조사를 촉구했다. 발암물질로 의심받고 있는 열화우라늄은 포탄의 관통력을 높이기 위해 사용된다.

앰네스티인터내셔널(AI)은 이스라엘이 가자를 공격하면서 국제법상 민간인 거주 지역에서 사용이 금지된 황린을 사용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AI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인구가 밀집한 가자시티와 가자지부 북부지역에서 황린의 사용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현지 의사들도 황린으로 화상을 입은 사람들을 치료했다고 증언했다. 황린은 심각한 화상을 입히는 독성 화학물질로 연막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군인들이 이동할 때 주로 사용된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은 국제법에 위반되지 않는 무기들을 사용했다고 반박했다.

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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