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부도방지협약 폐지해야 - 부작용 외면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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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연초 한보.삼미그룹의 부도이후 기업의 대량 부도사태가 더이상 방치되어서는 안된다는 인식하에 부도방지협약이란 대증요법적 고육책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부도위기에 처해 일시적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 3개월 정도 회생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어 기업을 회생시키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고 있는 부도방지협약은 관련기업이나 금융기관에 근본적 처방전으로 작용하기보다는 그 부작용이나 후유증이 더욱 심각하게 노정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부작용중 몇가지만 지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첫째,부도방지협약이 발동되는 업체가 발행한 어음은 당분간 자금회수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부실징후기업에 대한 여신을 조기에 회수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이에 따라 부실징후기업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소문이 나는 업체에 대해서는 무차별적인 자금회수 압력이 가해지고 견실한 중견기업체까지도 대출연장을 기피하는 현상이 만연해지고 있다.부도방지협약이 마치 부도를 촉진하는 결과를 빚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대증요법적 부도방지협약을 급조하는 바람에 시행과정상의 문제점 등으로 사태수습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예컨대 해당기업의 자구(自救)노력의 원만한 진행은 물론 소유주의 주식포기 내지는 경영권 포기여부등 부도방지협약의 내실있는 시행을 위한 다양한 선행조건의 이행도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셋째,부도방지협약의 선정기준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현행기준이 무차별적으로 적용된다면 대출금이 2천5백억원을 상회하는 대기업의 경우에는 자본잠식상태인 경우라도 이 협약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후유증을 야기할 수 있으며 선정과정에서 경제외적인 논리나 정치권의 개입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대기업들의 잇따른 부도와 부도방지협약 시행에 따른 부작용으로 대다수 기업들의 어음거래가 어려워지고,심지어 금융기관들이 보증을 선 회사채나 보증어음까지 기피하는 현상이 만연해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이런 상황이 장기화될 때 우리의 경제질서가 뿌리에서부터 흔들려 경제회생의 길은 더욱 멀어질 수도 있다.또한 우리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해외신인도의 하락으로 외자조달마저 더욱 경색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따라서 부도방지협약의 대폭적인 보완 내지는 폐지가 조속히 단행돼야 할 것이다.

불경기와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쟁력 없는 기업이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도태되는 것을 비경제적이고 비시장적인 부도방지협약이란 수단으로 대처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조처일 뿐만 아니라 대증요법에 불과하다.단기간의 아픔이나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근원적 처방으로 문제해결에 적극 대처하는 당국의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다.정부가 민간기업의 부도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시장논리에 입각해 채산성과 자금상황을 무시한 외형위주의 무모한 차입경영은 대기업도 망할 수 있게한다는 교훈을 기업인들에게 각인시켜줘야 할 것이다.

오늘의 어려움이 우리 기업들에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수익성 위주의 경영패턴으로 혁신과,무리한 사업다각화보다는 기업의 핵심역량을 비교우위의 전문분야에 특화(特化)할 수 있도록 제도와 여건을 조성하는데 정부가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만우 고려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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