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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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소위 이들이 말하는 브이 세대는 초등학교 때부터,아니 유치원 때부터 과중한 과외에 시달리며 늘 일탈과 탈출의 기회를 엿보아왔음을 알 수 있다.준우 학생이 자기 아버지가 속한 공무원 사회의 부정부패와 엄청난 사교육비를 연관시킨 것은 그 어떤 사회학자도 분석하지 못한 사항인 셈이다.

'우리집도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고부터 매달 과외비만 이백오십만원 가량 나갔다.한 과목당 평균 백만원이 넘으니 두과목 과외 겨우 할까 말까 한 나의 경우는 그래도 약과인 편이다.한국경제를 좌지우지한다는 정부기관에 근무하면서 기업 로비 자금을 몰래 받아먹을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아버지 덕분에 그런 과외도 가능하였지,그렇지 않았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그러고 보면 정부의 부정부패도 연간 20조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사교육비 때문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학습하는 학교가 과연 어디인지 방향감각을 상실한 지 오래다.학교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학원으로 혹은 과외 공부방으로 향하는 이들의 마음 속에 학교라는 것은 어떤 이미지로 형성되어 있을 것인가.학교 선생들은 수업을 하다 말고'너희들 이건 학원에서 다 배웠지?'하며 건너뛰기가 일쑤라는 말을 들었다.그리고 어느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야간 과외공부와 선생 자신들의 비밀과외 아르바이트를 위하여 수업 시간중에 선생과 학생이 함께 잠자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는 소문을 들을 때,그 소문이 제발 어느 짓궂은 코미디언이 지어낸 이야기이기를 바랄 뿐이다.기성세대가 준우 또래의 학생들을 학창시절의 자신들 같이 여기고 그런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크나큰 착각 속에 빠져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그런 착각 속에서 준우 또래의 학생들을 부조리한 교육환경 속에 그대로 방치한다면 불원간에 국가와 사회의 기둥이 곪아서 삭아들어가는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그 재앙은 이미 우리들에게 도래하여 그 불길한 혀를 늘름거리고 있다.

집단적으로 학교와 가정을 뛰쳐나온 청소년들이 자체적으로 범죄집단화하거나 다른 기성의 범죄집단과 연계하여 사회 혼란을 조성해나간다면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이외의 원인으로도 붕괴의 위기를 맞이할 수 있는 법이다.그런 조짐이 이번 니키 마우마우단 사건을 통하여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이전 수학 과외선생을 칼로 위협하여 과외비를 돌려받는다는 명목으로 구백만원을 빼앗아 해외 배낭여행을 떠난 준우 학생의 아버지는 경찰 조사 결과 준우 학생이 편지에서 말한대로 경제부서의 고급 공무원임이 밝혀졌는데,이렇게 겉으로 보기에 안정된 가정의 자녀도 적극적 일탈행위를 감행하는 것을 볼 때 결손 가정의 경우는 더욱 염려스런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제 교육개혁이라는 명목으로 지금까지 추진되어온 모든 프로그램들을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점검해야 하는,다시 말해 교육개혁 자체를 개혁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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