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의 길 따라, 희망 기관차는 출발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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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호 01면

오바마 시대를 상징하는 ‘담대한 희망의 열차’가 17일 낮(현지시간) 필라델피아∼워싱턴 구간 225㎞를 달렸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오바마 당선인은 이날 가족과 함께 나타나 ‘보통 사람’ 40명과 함께 필라델피아 서티스 스트리트역을 떠났다. 열차는 미국의 위상을 되찾아 달라는 미국인들의 염원을 안고 출발했다. 출발에 앞서 오바마는 역(驛) 로비와 맞닿은 ‘노스 웨이팅룸’에서 출정식을 했다. 우윳빛 대리석 벽에는 3개의 커다란 성조기가 걸려 장엄한 느낌을 더했다. 이 행사에는 40명의 동승객과 지역 정치인 등 초대받은 250명만 참석했다.

오바마, 열차 타고 워싱턴 입성

오바마 당선인은 이 자리에서 “우리는 희망과 변화의 시대를 열 수 있다”는 취지로 연설했다. 오바마의 임기는 20일 정오에 개시된다. 그러나 오바마는 이날 의회를 향해 자신이 마련한 8250억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 계획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올해는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다. 최대한 빨리 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 ‘위트니스’의 무대였다는 역사(驛舍) 로비에는 먼발치에서라도 오바마를 보려는 시민들로 가득 찼다. 이들은 오바마 취임 행사의 출발지가 미국 독립전쟁 당시 대륙회의가 열렸던 유서 깊은 필라델피아로 결정된 사실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행사 준비를 위해 자원봉사자로 나온 래리 스티어는 “필라델피아에서 오바마의 취임 여행이 시작된다는 게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오바마가 리무진도 제트기도 아닌 보통 사람들이 타는 열차로 간다고 해 크게 감동했다”고 덧붙였다.

열차는 먼저 조셉 바이든 부통령 가족을 태우기 위해 윌밍턴에 들른 뒤 볼티모어를 거쳐 이날 오후 워싱턴에 도착했다. 오바마가 가장 존경하는 링컨이 취임식 때 밟았던 여정 그대로다. 그는 필라델피아부터 워싱턴으로 가는 도중 열차가 멈출 때마다 몰려나온 인파를 향해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는 짤막한 연설을 했다. 이른바 ‘휘슬 스톱(whistle stop)’ 여행이다. 그는 공화·민주당의 정쟁, 이념 갈등, 종교 대립 등으로 갈라진 미국 사회를 아우르는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을 위한, 보통 사람들에 의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바마는 최근 ‘열린 정치’와 통합을 다짐해왔다. 특히 필라델피아∼워싱턴 간 열차여행을 비롯한 각종 행사에는 보통 사람들을 향한 ‘열린 정치’의 정신을 실현하고 있다. 그는 14일 “이번 취임식은 내가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라며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단결하자”고 말했다.

열차 여행의 동행자 면면을 보면 오바마의 열린 정치, 풀뿌리 정치의 구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오바마는 자기와 함께 역사적 여행에 참여할 이들을 직접 골랐다고 한다. 선택 기준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일을 해낸 보통 사람이었다. 여기에 자신 또는 바이든 부통령에게 실질적인 지식을 주든, 일깨움을 주든, 어떤 형태로든 구체적인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골랐다.

예컨대 미 언론에 소개된 아이오와 출신 랜디 웨만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수십 년간 공화당을 지지했던 랜디는 아내 베스 덕택에 오바마와 슬픈 인연을 맺었다. 베스는 젊은 오바마의 신념에 감동해 2년 전부터 오바마 진영의 자원봉사자로 뛰었다. 그러던 중 부부에게 비극이 닥쳤다. 남편 랜디는 전립선암, 아내 베스는 췌장암 선고를 받은 것이다. 베스는 지난해 10월 숨지기 몇 시간 전 침상에서 부재자투표를 통해 오바마에게 소중한 한 표를 던졌다. 랜디 역시 오바마의 열성 지지자로 돌아선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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