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경영일기>김태구 대우자동차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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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4년전'T-CAR,J-CAR,V-CAR 3개 차종 동시 개발'이라는 폭탄선언(?)이 내려지던 날.기억도 생생하다.

입사 20년의 기술연구소장은 아예 말이 없고….각각 책임자로 배정된 젊은 박사 임원들도'정말은 아니겠지요'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세계 자동차메이커 사상 유례없는 3년만에 3개 차종 동시개발은 이렇게 시작됐다.

당시 우리의 생산은 20만대선.이런 상황에서 국내외 각각 1백만대 모두 2백만대 생산.판매 비전을 내걸었으니 누구도 꿈일 뿐 실현 가능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실무진은 하나같이 불가능하다는 반응을 보였다.이유는 지금 있는 직원들의 신차 개발 경험이 부족하고,연구 인력 자체도 모자라고,경험있는 인력을 다른 곳에서 뽑아올 수도 없는 상황등. 모두 사실이었다.경험이 부족한 실무진이 자신감 없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그러나 이같은 불가능에의 도전없이는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었다.

신차개발 조직은 프로그램매니저(PM) 중심으로 편성됐다.

설계.시험.개발조직을 차종별로 재배치하고 담당 PM에게 전권을 위임했다.시간이 지나며 예상치 못했던 분위기가 형성되고 고조됐다.처음부터 노렸던 시너지 효과는 말할 필요도 없고,3차종간에 내 차종이 뒤질 수 있느냐는 경쟁의식까지 상승작용을 일으켜 효과는 더욱 컸다.

그룹에서 이미 설립해 놓은 고등기술연구원,그리고 각사 연구소 인력이 동원됐고 양평동에 조그맣게 있던 디자인포름(스타일링 연구)이 가세한 것은 물론 때마침 인수한 영국의 세계적 워딩연구소 수백명의 기술인력은 큰 보탬이 됐다.또 독일 엔진연구소도 기간중 설립됐다.

함께 먹고 자고 실습하는 패밀리트레이닝 교육이 협력업체 인원에게도 실시됐다.

협력업체 한 직원은“평생 이런 교육은 처음 받았습니다”라며 감개무량해 했다.경험있는 일본 컨설턴트를 데려다 협력업체 지도를 맡기기도 했고,해외 이름있는 메이커 차량 50여대 이상이 분해되고,우리 간부들은 물론 협력업체 사장.임원들까지도 일본 도요타 연수를 다녀오는등 한마디로 고정관념을 깨는 필사의 노력 그것이었다.

라노스.누비라에 이어 마지막 옥동자 레간자 출시를 알리던 지난 4월,신문광고에는 가운 입은 우리 연구소 기술진 전원이 어둠속에서 엄숙하게 서 있었다.사람들은 이게 무슨 자동차 광고냐 했을 것이다.그러나 상징적인 이 의미를 우리회사 모두는 잘 알고 있었다.

4년전 그때 기존의 관념을 뛰어넘는 발상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 회사의 모습은,위치는 어떤 것일까. 사람들이,특히 직장인들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은 어렵다.그러나 우리 회사의 경우 안팎으로 모두가 어렵다고 하던 3차종 동시개발을 결국 완수했고 그 결과 모두 자신감도 생기고 신이 나고 좋은 분위기다.50~60년대 경제가 어려웠을 때 고학생들이 많았다.한편으로 배우고,한편으로 가정교사하면서 힘든 삶을 보내던 시절이 생각난다.

지금도 나라는 안팎으로 어렵다고들 한다.또 그 해결책도 여러 가지로 이야기된다.나는 지금이야말로 온 국민이 패배의식을 버리고,예지를 모아 다시 한 번 우리의 역량을 과시할 때가 아닌가 한다.

<김태구 대우자동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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