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102. 연고전과 소게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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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게이오대 개교 1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필자, 연세체육회 박갑철 회장과 조광민 전무(왼쪽에서 둘째부터).

세계 명문 사학들이 전통과 명예를 걸고 스포츠 대결을 펼치는 정기전이 여럿 있다. 우리는 연세대와 고려대의 연고전이고, 일본은 와세다(早稻田)와 게이오(慶應)의 소게이전(早慶戰)이다. 영국에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조정경기인 옥스브리지(Oxbridge))가 있다, 미국에서도 하버드와 예일의 조정경기가 유명하다.

연세와 고려는 매년 가을 이틀간 축구·야구·농구·럭비·아이스하키 등 5개 운동부가 정기 연고전을 펼친다. 어디까지나 한국 근대사를 대표하는 두 명문 사학이 친교를 다지고 젊은 학생들의 기개를 고취시키는 게 목적이다. 그런데 가끔 그 정신을 잊어버리고 승부에만 집착하다가 추태가 벌어져 동문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대학 명예를 해치는 연고전이라면 차라리 폐지하자”는 일부 주장도 나온다.

양교 체육회는 졸업생과 대학이 합동으로 구성하는데 내가 연세체육회 회장을 맡고 있을 때 고우체육회 회장이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행사 때마다 상호 방문한 일이 있다. 현재 연세체육회 회장은 박갑철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이며, 나는 명예회장이다.

게이오대에 방문교수로 있다 보니까 소게이전도 자주 보게 됐다. 소게이전은 연고전과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게이오대에는 39개 운동부가 있는데 어떤 종목에서든 와세다와 붙으면 그게 소게이전이다. 워낙 운동부가 많아 한꺼번에 모아서 할 수도 없다.

성적을 보면 와세다가 훨씬 앞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와세다에는 체육대학이 있어 특기생을 별도로 뽑지만 게이오는 그야말로 순수 아마추어 학생선수들이다. 그래도 승패가 있는 경기니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운다. 조정경기는 거의 일방적으로 와세다가 이기지만 문제는 생기지 않고, 두 대학의 전통은 유지된다. 양교 총장과 교수·동문들이 모여 응원하고, 경기가 끝나면 동문들이 축하회를 열어 친교를 다지는 것이다.

게이오대의 히요시 캠퍼스는 교양학부가 있는 곳인데 학생들은 공부하면서 39개 운동부에서 체육활동을 한다. 부러운 것은 39개 운동부 모두 연습장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명한 야구선수와 육상선수도 배출된다.

박갑철 회장의 요청으로 게이오체육회와 연세체육회 간 교류협정을 주선했다. 게이오체육회는 명목상 안자이 총장이 회장으로 되어 있지만 실무는 미야지마 교수가 대행한다. 이제 양교는 학업뿐 아니라 스포츠도 교류하고 있다. 지난해 게이오대 개교 150주년 기념식에도 초청을 받아 연세체육회 임원들이 방문했다.

지난해 12월 5일 ‘연세 체육인의 밤’ 행사에서 내가 축사를 하게 됐다.

총장과 동창회 간부, 교수, 5개 운동부 현역과 동문이 다 모인 자리에서 나는 연세대와 게이오대의 체육시설을 비교하면서 “대학 체육시설은 운동선수만을 위한 게 아니라 전체 학생을 위한 것이다. 학생들의 인격 교육을 위해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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