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식 추진 곳곳에 걸림돌 - 금융개혁 강경식부총리 의지 관철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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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요란하게 팡파르를 울려가며 시작했던 금융개혁위원회의 작업이 막상 마무리단계에 와서 뒤뚱거리고 있다.

업무영역조정등 단기과제는 원만하게 매듭지어지고 있는 반면 한은독립.금융감독체계개편.은행소유구조 개선등 3대 핵심과제를 놓고 용두사미의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금개위는 일단 주사위를 던졌다.차제에 3대 핵심과제까지 모두 끌어내 법제화하자는 것이다.공은 일단 정부와 여당에 넘어간 셈이다.

정부로서는'반개혁적'이라는 비난이 두려워서라도 금개위의 건의를 함부로 무시할 처지가 못된다.더구나 강경식(姜慶植)부총리 스스로가 취임초부터 과감한 개혁안을 기대한다며 금개위 활동을 독려했던 만큼 얼렁뚱땅 넘어가기도 어렵게 돼 있다. 그러나 재경원이 금개위 건의안을 적극 수용한다 해도 법제화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여당의 외면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姜부총리는“금개위 건의를 토대로 관련법 개정안을 만들어 가능한한 6월 임시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며,그게 안되면 9월 정기국회엔 반드시 제출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하지만 그 실현성은 시간이 갈수록 퇴색돼 가는 징후가 역력하다.姜부총리의 적극성에도 불구하고 재경원 실무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하다.과거 한은법파동이 얼마나 힘든 소모전이었나를 돌이켜보더라도 지금같은 정치혼란기에는 도저히 실현불능이라는 것이다.

사실 지난 1월 대통령 직속으로 금개위가 출발할 때만 해도 한은독립.금융감독체계 개편.은행소유구조 개선등 3대 핵심과제는 터부시됐다.

금개위를 사실상 탄생시킨 장본인인 이석채(李錫采)전경제수석조차 정권말기에 3대 핵심과제를 밀어붙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금개위와 정부는 따라서 금융기관간 업무영역을 트는등 금융개혁 단기과제를 확정,연내에 추진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금개위와 정부는 터부시된 3대 핵심과제를 중장기과제로 분류,9월말까지 안을 확정하는데 만족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이같은 방침은 금개위가 출범하면서 이내 바뀌었다.금개위 내부에서 일부 위원들이 3대 핵심과제도 연내에 매듭짓자고 나서면서 중장기과제의 확정시한이 9월말에서 6월말로 앞당겨졌다.

이즈음 姜부총리가 등장했다.그는 취임 일성으로“83년 재무장관 당시 은행감독원을 한은에서 떼어냈으면 한보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중장기과제도 5월말로 앞당겨줄 것을 요청했다. 그 이후 姜부총리는“금개위 중기과제가 확정되는대로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거듭 밝혀왔다.

그러나 여당쪽이 노골적으로 난색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이에 姜부총리도“6월2일 개최되는 임시국회에는 시간이 없어 도저히 한은법 개정안을 제출하기 어렵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는 곧바로 금융개혁 연기로 해석됐고,신한국당에서 13일 금융개혁 연기를 요청하면서 기정사실화됐다.

이번에는 금개위가“서두르라고 할 땐 언제고 지금와서 무슨 소리냐”고 반발했고,여론도 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난처해진 姜부총리는“임시국회가 6월2일 열리면 힘들다는 얘기였지 안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며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추진의지를 재삼 확인했다.

그러나 정치권이 이같은 금융개혁을 처리해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姜부총리로서는 어찌 보면 고독한 싸움이기도 하다.“한은 독립이 표를 떨어뜨리는 비인기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경제상황이 이것저것 생각할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금융개혁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으나,금개위를 제외하고는 충분한 원군을 확보하고 있지 못한 상태다.그렇다고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아니다.

재경원 내에서조차 정치현실을 감안,회의적인 반응이 여전한 편이다.특히 자기들이 배제된채 만들어진 금개위안에 대한 불신감도 상당하다. 고현곤 기자

<사진설명>

강경식 부총리가 한은독립등 금융개혁 중장기 과제에 관한 법률개선안을 6월 임시국회에 올리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임에 따라 당정간에 논란이 예상된다.사진은 금융개혁위원회 전체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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