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니키 마우마우단원들이 순찰차가 동쪽 비트 앞을 천천히 지나갈 동안 로즈 버드단원들과 함께 몸을 숨기고 있다가 순찰차 꽁무니가 골목을 빠져나가고 나서야 다시 모여 앉아 떡볶이 점심을 마저 먹고 비트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혼자 남아 있던 우풍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야구방망이와 쇠파이프들이 서너 개 없어졌고 가방과 옷가지들이 뒤적임을 당한듯 여기저기 내팽개쳐져 있었다.

“형사들이 덮친 게 분명해.우풍이 잡혀갔어.부탄가스통들도 증거물로 삼으려고 가져갔군.체,관은 가져가지 않았군.” 기달이 허탈한 표정으로 단원들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어떡하지? 형사들이 또 쳐들어올 게 뻔한데 비트를 빨리 옮겨야 되잖아.아까 순찰차 안에 우풍이 비슷한 녀석이 앉아 있었던 것 같애.” 순찰차가 꽁무니를 보일 무렵 반지하 창틈으로 훔쳐보았던 용태가 입술이 타는 듯 이빨로 아래위 입술을 긁어대며 상처난 맹수처럼 비트를 왔다갔다 하였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군.우선 여기서 튀는 수밖에.이 폐허 마을을 빠져나가 다른 재개발 마을이나 재건축 마을로 기어 들어가든지 아니면 아예 저 뒷산 너머 계곡에 텐트를 치든지.비트가 정해질 때까지는 청량리나 영등포 쪽방 같은 데서 자지 뭐.”“하여튼 튀고 보자!” 니키 마우마우단원들은 로즈 버드단원들에게 비트를 옮기라는 말을 전해줄 여유도 없이 옷가지와 가방들을 급히 챙겨들고,무너진 건물 벽과 담벼락에 몸을 숨겨가며 대형 슈퍼마켓 잔해를 지나 남쪽 방향으로 빠져나가 산등성이를 타고 넘었다.

“우풍이 뭣 땜에 끌려갔을까? 청량리역에 버린 옥정이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 비트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하고 경찰에 불어버린거 아냐? 이런 불상사가 있을까 싶어서 내가 누누이 옥정이를 처치해버리자고 한건데.너희들이 주장한 그 알량한 휴머니즘인가 뭔가가 일을 망친 셈이야.” 용태가 나뭇가지를 헤쳐가며 부루퉁한 얼굴로 시부렁거렸다.

“그냥 가출 소년들 집으로 되돌려보내려고 데리고 갔을지도 몰라.형사들이 들어와 보니 관도 놓여 있고 야구방망이,쇠파이프들도 있고 해서 일단 우풍이를 잡아갔다가 별로 단서가 안 잡히면 부모에게 연락해서 집으로 돌아가게 할 거야.우풍이가 얼마나 눈치가 빠르고 말을 잘 하니? 그러니 그렇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거야.정 마음이 안 놓이면,우풍이 경찰서 유치장에 있을 동안에 우리가 형사 몇놈 때려눕히고 구출을 하든지.” 도철이 비트에 남아 있던 쇠파이프 하나를 들고 나와 등산용 지팡이처럼 땅을 짚어가다 말고 허공에다 휘익,한번 휘두르며 결의를 다졌다.

<글 : 조성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