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중년>8. 재테크가 문제다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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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소규모 자영업을 하고 있는 권기철(57.서울노원구상계동)씨 부부는 불경기 탓인지 4백만~5백만원 정도의 요즘 수입으론 가게 월세와 종업원 월급을 제하고 나면 사실 생활비도 빠듯하다.

그래도 매달 1백만원이 넘는 보험료는 빠뜨리지 않는다.자식들이 다 결혼해 독립했기 때문에 지금 불입하고 있는 것들은 모두 權씨부부만을 위한 개인연금보험이나 암보험등이다.생활설계사들과의 안면으로 불입을 시작한 탓도 있지만 노모와의 생활비마저 압박받는 요즘도 해약의 유혹을 버티고 있다.손해도 손해지만 무엇보다 노후에 자식들을 당당하게 대하고 싶기 때문이다.“자식들에게 물려줄 큰 재산은 없더라도 늙어서 용돈 타쓰느라 눈치볼 일은 없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같은 바람은 비단 權씨만의 것은 아닐듯.특히 노인이나 노부부 단독가구가 급증하고 있는데다 평균수명 또한 73.5세(95년 현재)에 이르렀다는 최근의 통계청 발표는 노후대책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잘 보여준다.

충남대 가정관리학과의 김순미 교수는“정상적인 노후생활을 즐기기 위해선 은퇴후에도 최소한 현재 월수입의 60%이상의 수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하지만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는 아직 걸음마 단계.게다가 현재의 중년층은 자녀들로부터 경제적으로 자립해야할 첫세대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중년에 노후를 위한 재테크가 남의 일이 아닌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안정된 노후생활에 초점을 둔 중년층 재테크에서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할 것은 고정된 수입의 보장이다.그래서 선호하는 형태가 연금식 금융상품이나 부동산. 그러나 우리나라 중년층의 경우 본인들을 위한 저축을 따로 시작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오히려 자녀들이 성장해 고등학교.대학교를 다니거나 결혼하게 되면서 부모들로선 목돈 마련에 쩔쩔 매는 시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만큼 노후를 위한 재테크는 일찍 시작할 필요가 있다.저축과 보험.연금등 노후자금을 몇년 전부터 마련중이라는 35세의 주부 최영은(서울송파구잠실동)씨는“남편의 직장생활이 안정되자마자 시작했지만 결코 이르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한다.

崔씨 부부의 경우 틈날 때마다 서로에게 유언을 알려주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혹시 불행한 일이 생기더라도 자식들간에 분쟁이 생기는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다 여유가 생겼을 때 선호하는 것이 부동산 매입.퇴직금이 따로 없는

자영업자일수록 이익이 많이 남을 때 안정적인 부동산을 마련해 두려는

심리가 강한 편이다.국민연금등의 수혜가 보장돼 있는 일반 직장인들도

적금이나 퇴직금으로 목돈이 생기면 부동산에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사실 현금으로 가지고 있다가 자식들이 부탁하면 거절하기

어렵잖아요.하지만 마지막까지 재산을 유지해야 자식들의 관심을 계속 끌 수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주부 김영애(51.서울강남구삼성동)씨는 15년전

본인이 퇴직할 때 생긴 목돈으로 강남에 작은 아파트를 사두었다.지금은

전세를 주고 있는데 곧 재개발이 되면 월세로 돌려 노후에 쓸 작정이다.

각자의 형편에 따라 현재의 집 규모를 줄이거나 늘리는 것도 노후대책의 한

방법이 된다.10년전 서울에서 분당의 더 큰 아파트로 집을 옮긴 박성호(67)씨

부부는“둘만 살텐데 뭐하러 평수를 늘리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朴씨의 생각은 부모집이 넓어야 자식들이 놀러와도 집이 좁다고 일찍

가버리는 핑계가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그새 집값도 껑충 뛰어 朴씨 부부에겐

확실한 유산 역할을 하게 됐다.

반면 주부 이경자(49.서울관악구봉천동)씨는 막내딸이 결혼할 때쯤 집을

작은 곳으로 옮겨 결혼자금으로 쓸 예정이다.대신 중소기업체에 다니는

남편의 퇴직금과 약간의 보험금 수당등으로 서울 근교에 작은 카페를

차려보기로 했다.

국민연금의 고정수입이 있으니 용돈이나 보탤 정도만 되면 두 내외가 심심치

않게 지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남편의 퇴직까지 2년정도 남은 요즘엔 한달에

한두번 남편과 함께 땅을 보러 다닌다.의외로 자신들과 비슷한 동기로

영업중인 전원카페가 많아 그곳 주인들로부터 짭짤한 도움말을 얻어오기도

한다.

물론 신선한 공기를 쐬며 남편과 둘만의 오붓한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예상 외의 고정수입(?)이다.

“우리 아이들이 착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식 덕 볼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자립심을 길러주기 위해서도 그애들에게 모든 걸 다 쏟아야 한다고도

생각지 않고요.” 李씨의 말이 결코 매정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제

그것이 우리 시대 중년의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수 기자

<사진설명>

대한투자신탁 남대문지점에서 노후연금을 타가는 고객.노후에도

자식들로부터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기 위한 중년의 재테크는 고정수입이

보장되는 연금성 금융상품이나 부동산이 선호되는 것이 특징이다. 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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