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빛과그림자>7. 끝. 태국 - 성장 거품빠지자 후유증 심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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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방콕의 북쪽 위성도시인 무앙통타니시에 가면 우뚝 솟은 콘도미니엄과 아담한 단독주택들이 늘어선 신흥주택가가 쉽게 눈에 띈다.언뜻 보기에 서구의 주택가를 그대로 옮겨놓은듯 가지런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창틀에 거미줄이 무성한채 텅 비어 있다.

“외화내빈(外華內貧)이지요.호황기에 제대로 내실을 다지지 않고 부동산투자에 재원을 낭비한 결과입니다.”출라롱콘대 키티교수의 뼈아픈 자성이 담긴 말이다.

부동산 개발붐에 편승해 재미를 보던 금융기관들도 거품이 빠지는 것과 함께 막대한 부실채권을 떠안게 됐다.태국 최대의 금융회사인'파이낸스 원'이 넘어가고 금융권 전체가 흔들리자 태국정부는 주식시장에서 금융주의 거래를 중단시키는 최후수단을 동원했지만 태국증시의 주가는 최근 14개월동안 50%이상 빠졌다.중앙은행은 바트화의 절하를 막기 위해 수십억달러를 외환시장에 쏟아 넣었지만 언제 다시 외환투기의 표적이 될지 몰라 전전긍긍이다.

“모두 황금시절을 즐겼습니다.고도성장의 와중에 누구나 떼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태국 농업은행의 반툰 람삼 행장도 거품경제의 폐해를 통탄해 보지만 당장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게 고민이다.

최근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사는 태국의 국가신용평점을 A2에서 A3로 한등급 낮췄다.차투몽콘 재무부차관보는“(현재 태국의 경제불안이)저소득국가에서 중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에 불과하다”고 강변하지만 태국경제의 부진은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진단하듯 일시적인 경기순환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심각하다.

우선 인프라의 부족과 낮은 교육수준은 구조적으로 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요인이다.70년대부터 시작된 주요 인프라 구축계획은

아직도'공사중'이다.73년 착공한 신공항 예정지는 여전히 늪지로 남아

있다.방콕의 악명높은 교통체증은 이제 어떻게 손써볼 단계를 지났다.대신

과잉투자로 남아도는 콘도미니엄과 노는 공장들이 수두룩하다.6억달러짜리

사하비리야 제철소는 가동률이 절반에도 못미치고 태국전신전화와

텔레콤아시아가 20억달러를 들여 깔아놓은 2백만회선의 전화선은 녹슬고

있다.

태국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문제는 기술인력

부족이다.태국은 세계 10대 벤츠승용차 수입시장으로 꼽히면서도 중학교

진학률은 34%에 불과하다.

그러나 태국의 장래가 마냥 잿빛만은 아니다.지난해말 등장한 차왈릿 내각은

경제회생을 첫번째 과제로 삼고 예산삭감으로 정부가 앞장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태국 경제계도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기업인들 사이에선“이제 단순조립에서 벗어나 부품.소재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를 흔히 들을 수 있다.

인력자원을 키워야 한다는데도 정부와 기업이 한 목소리다.정부는

의무교육기간을 현재 6년에서 9년으로 늘려잡았고,경제인연합회(FTI)와

상공회의소는 기술훈련원.기술전문대학을 세웠다.새 내각이 내놓은

재정긴축과 규제완화라는 처방전도 방향은 잘 잡았다는 평가다.계획대로만

된다면 태국이 성장의 탄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게 주요 국제기구의

진단이기도 하다.아.태경제사회이사회(ESCAP)는 태국 경제가 지난해 6.7%를

바닥으로 2000년까지 평균 7.3%의 높은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방콕=김정수 전문위원,김종수 기자

<사진설명>

낮은 교육수준과 부족한 인프라가 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악명높은

방콕시내의 교통체증은 이제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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