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역사교과서 가처분 판결 옳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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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급기야 역사교과서 수정 문제가 법원 판결까지 받아야 했다. 수정 지시를 거부한 교과서 저자들이 출판사에 의한 수정은 불법이라며 법원에 수정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기 때문이다. 다행히 법원은 ‘교과부 지시를 성실히 이행한다’는 저자들의 사전 동의서 제출 등을 근거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교과서에 대한 자신의 서술내용이 법적 절차와 교육행정권보다 위에 있다는 저자들의 주장은 분명 상식에 벗어난 것이었다. 이는 학문·사상의 자유에 따른 개인 저작행위와 정부 예산과 공무원에 의해 수행되는 국가에 의한 국민교육을 구분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우리 역사교과서는 국민적 공분의 대상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북한 전체주의자인 김일성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이념적 명분을 가지고 있었으며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찬양조로 서술했다. 반면 이승만과 박정희는 ‘독재정치와 부정부패’의 화신이자 ‘헌법 위에 존재하는 대통령’이라는 식의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나아가 한국 현대사는 민주주의를 짓밟은 역사였지만, 북한 현대사는 ‘본격적인 사회주의 개혁을 추진’하고 ‘우리식 사회주의와 조선민족 제일주의를 내세워 세계 변화에 대응’한 나라라고 기술했다. 어처구니가 없다.

그렇기에 북한은 우리 역사교과서의 수정작업에 대해 누차에 걸쳐 ‘친미반공적 역사왜곡 책동’이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교육성 대변인이 나서 “남조선의 역사교과서 개악 책동은 정의와 진리에 대한 난폭한 유린이자 역사와 진실에 대한 악랄한 도전”이라는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실제로, 편향된 우리 역사교과서의 내용 전개는 학문의 자유를 내세운 대한민국 짓밟기이자 북한 체제에 대한 옹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금성출판사의 역사교과서는 검정과정부터 편향성 부문에서 대부분 C등급을 받아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출발한 교과서였다. 내용전개 자체가 균형 잡힌 학문 연구결과로 인정받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교과부가 금성교과서 검정을 취소하지 못하고 기껏 몇 가지 부분 수정만을 요구한 데다, 이것조차 저자들이 거부한 상황은 우리 사회의 정체성 왜곡 문제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전 세계의 모든 역사교과서는 국가 정통성의 확립과 함께 자기 국가가 도전하고 성취한 위대한 기록과 이에 대한 계승을 위주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우리 교과서는 오히려 대한민국이 성취한 것을 부정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교과부나 저자들은 편향 논란을 불러일으킨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해 지금까지 6년간이나 학교에서 교육되어온 상황에 대해 사죄부터 했어야 마땅하다.

역사교과서 수정 문제는 우리 교육과정의 일단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 사회는 현재 대한민국을 만들어 지키고 성공시켜온 역사를 부정하는 거대한 세력의 도전 앞에 직면해 있다. 대한민국이 잘못되고 정부가 실패하기를 바라는 많은 세력이 왜곡된 시민교육과 역사인식에 바탕을 두고 활동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가 번영시킨 대한민국과 우리가 선택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배우기도 전에 그 문제점과 잘못을 교육받는 데 몇 배 더 많은 양과 시간이 할당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젊은 세대는 대학 졸업 후 상당 기간의 직장생활을 하고 나서야 현실을 이해하는 교육지체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시작은 이제부터다. 비록 금성교과서의 채택률이 떨어지고 부분수정도 이뤄졌지만 교과부는 이제 충분한 시간을 갖고 근본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어떻게 그와 같은 역사교과서가 만들어지고 검정을 통과해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지도록 되었는가에 대한 철저한 감사와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문제를 고칠 수 있고 올바른 교과과정 제도를 확립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국가 차원에서 교육과정 전반에 대한 대대적 재검토와 근본적 개선을 시작해야 할 절박한 상황에 있다.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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