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언론 - 칸영화제, 할리우드化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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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50주년을 맞아 전세계 이목을 집중시킨 칸영화제가 7일 화려하게 개막돼'프랑스의 스필버그'로 불리는 뤽 베송 감독의'제5원소'를 필두로 야심작들이 차례로 선보이고 있다.미국과 유럽 영화계를 긴장시키는 동양권 영화 가운데 장이모(張藝謨) 감독의'냉정'은 중국당국이 출품을 막았으나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체리의 맛'은 우여곡절끝에 칸에 도착,희비가 엇갈렸다.18일까지 계속되는 세계 영화계의 최대 행사인 칸영화제를 현장에서 소개한다. 편집자

올 해 칸영화제의 분위기는 그리 밝지만은 않다.이날 개막 초청작으로

상영된 프랑스 뤽 베송감독의'제5원소'와 심사위원회의 구성,경쟁작과

영화제 초청손님을 둘러싼 잡음들이 잇따라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칸영화제는 특히 프랑스 언론과 영화비평가들로부터 불만을 사고

있는데 이는 칸영화제가 자꾸만 할리우드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우려에

바탕을 두고 있어 주목된다.

할리우드의 상업성이 세계 영화계를 지배하다시피 하는 상황에서 그래도

칸영화제만은 영화의 예술성을 중시하는 프랑스적인 기준을 고수해

유럽영화의 자존심을 지키는 보루로 인식돼 왔기 때문이다.지금의 상황으로

보면 칸영화제의 앞으로 50년은'할리우드화'와의 전쟁이 될 전망이다.

프랑스사상 최고액수의 제작비(9천만달러)를 들인 것으로 알려진 뤽

베송감독의'제5원소'는 이곳 비평가들로부터 그리 높은 점수를 얻지

못했다.프랑스 고몽영화사가 제작했으나 특수효과와 볼거리 위주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별 다를바 없어 뤽 베송에게'프랑스의 스필버그''틴

타란티노의 다음 주자'란 비아냥거림이 비평가들로부터 나왔다.

기자회견에서 스필버그 이야기가 나오자 뤽 베송은“스필버그는 위대한

감독이다.그와 비교된다면 그건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응수했다.언론의

혹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브루스 윌리스가 대신“우리는 아무도

영화평에 신경쓰지 않는다.영화평이란 문자세대들만이 보는

것이다.전자매체시대에 영화평을 글로 쓰는 사람들은 공룡과 같은 운명에

놓인 사람들”이라고 말해 회견장의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기도 했다.

'제5원소'는 특히 칸영화제측 요청으로 프랑스 비평가들에게 사전자료나

시사회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에서 먼저 시사회가 열린 점

때문에 프랑스 언론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9일'제5원소'의 개봉을 앞둔

미국에서 사전홍보 없이는 개봉이 불가능하다고 고집하자 유럽에서만

엠바고를 걸고 미국에선 사전홍보작업을 진행했던 것. 칸영화제는 또 지난

몇년간 너무나 할리우드 스타들을 유치하는데 신경쓴다는 지적을 받아왔고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이와 관련해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미국 여배우 미라 소르비노의 심사위원

위촉.사실 지난해 우디 앨런감독의'마이티 아프로디테'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것 외엔 별다른'업적'이 없는 소르비노가 심사위원의

영예를 안은 것은 프랑스에서 인기높은 미국감독 두 사람과의 친분 때문이란

말이 나온 것. 소르비노가 중국어에 능통한 점도 또다른 심사위원인 중국

여배우 궁리에 대한 배려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영화제 초청손님에

관해서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스타배우 알랭 들롱과 장 폴 벨몽도가'파리

마치'지에서 대놓고 비난했다.

초청자 명단에서 빠진 두 사람은 칸영화제가 할리우드의 TV스타 파멜라

앤더슨은 초청하면서 자기들을 빠뜨렸다고 불만을 털어놓았으며 장 폴

벨몽도는“그동안 여러차례 칸영화제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유치에 혈안이

돼 프랑스영화 지원에 소홀히 한 점을 지적해왔다”고 말했다.

황금종려상을 다투는 경쟁작에 선정된 작품들도 지난해보다 떨어진다는게

중평.19편중 조니 뎁.게리 올드먼.사만사 랭감독의 세 작품은 감독

데뷔작이고 8편이 거친 범죄영화인 점에 대해 질 자콥 조직위원장은“요즘

영화팬들은 살인.폭력.피를 보기 원하는 것같다”고 궁색하게 설명했다.

게다가 일요일인 11일 저녁에 열리는 50회 기념행사에서 하이라이트를

이룰'황금종려중의 황금종려상'수상자로 선정된 스웨덴 잉그마르

베리만감독이 칸에 오지 못한다고 통보해왔으며 폐막 초청작으로

상영될'절대권력'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감독도 신작 촬영 스케줄 때문에

불참하게 돼 분위기조성에 보탬을 주지 못하고 있다. 칸=이남 기자

<사진설명>

칸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중국의 스타 궁리가 칸영화제 개막행사가 열리는 팔레 드 페스티벌에 입장하면서 팬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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