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계란에서 상상력 길어내고, 현실에서 건물 지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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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호 31면

최문규는 낙천적인 사람이다. 그와 함께 일하는 가아건축의 식구들도 최문규를 닮았다. 그렇다고 그가 가볍게 건축을 하는 것은 아니다. 비평가 박길룡은 최문규라는 사람을 “골체가 건강하다”고 표현했다. 그가 만드는 건축과 그 건축을 만드는 과정 역시 건강하다. 쌈지길이 군더더기 없는 건축으로 여전히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다. 건축가와 건축을 돌보는 데 인색한 한국 사회에서 ‘건강함’은 건축가와 건축이 가져야 할 미덕이자 생존 조건이다.

쌈지길 설계한 최문규

최문규는 한국의 많은 건축가들과 마찬가지로 파편으로 작업을 한다. 한국 건축에서 모던의 전통이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외국 잡지에서 많이 본 듯한 트렌디 이미지가 눈에 띄고 고전적인 모더니즘의 단편이 보이기도 한다. 교수이자 건축가인 최문규는 때로는 논리적인 과정을 거친다. 가아건축 식구들의 제안을 순간의 상상력과 결합시켜 건축을 건물로 실현한다. 문어와 미꾸라지, 계란과 치즈에 대한 상상으로 출발해 철저하게 현실에 적응하는 건물을 완성한다. 직설과 비약을 엮어낼 수 있는 건축가의 능력이다. 복잡하게 얽힌 통로들을 한곳으로 정리하는 문어의 공간 위상, 계란과 같이 껍데기 안에 한 공간이 다른 공간을 에워싸고 있는 건축에 대한 발상들이다. 하지만 완성된 건물의 모습이 계란이나 문어를 닮은 것은 아니다.

최문규가 설계한 건물들은 파주출판도시와 헤이리 아트밸리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 파주출판도시에는 태학사, 서해문집, 아름드리 미디어, 독서지도회 등이 있다. 헤이리에는 창고 미술관, 정한숙 기념관 그리고 조민석과 함께 설계한 딸기테마파크 등이 있다. 그가 부분 부분 즐겨 사용하는 형태나 재료들이 느껴지지만 건물은 제각각 다른 모습이다. 그의 건축은 의심과 질문에서 출발한다. 정형화된 브랜드가 되기 어려운 이유다. 브랜드의 장점은 사람들이 그것을 의심 없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브랜드는 일종의 맹신이다. 최문규는 브랜드가 되는 것을 싫어한다. “의심은 아름답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아름다운 건축을 만들겠다는 뜻은 아니다. 의심에서 출발해 건물이라는 확실한 존재에 이르는 그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의심과 실천이 함께한다는 것, 그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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