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시민의식이 타결 이끌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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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환 사회부 기자

"내일부터는 시민들이 가만 있지 않을 텐데…".

지난 1일 저녁, 대구 시내버스 노사가 3일만에 협상을 벌이다가 2시간만에 다시 결렬되자 협상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튿날 대구 도심에선 파업 철회를 촉구하는 시민 촛불집회까지 예정된 터였다.

지난달 25일부터 8일간의 시내버스 파업으로 시민들은 무더위 속에서 하루 하루를 참 힘들게 보냈다.

그러나 세금 퍼주기 식의 미봉책 대신 협상으로 파업이 풀린 것은 성숙된 시민의식 덕분이었다.

파업 시작부터 대구시는 여론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교통국은 매일 아침 시민전화나 홈페이지 게시판 등을 분석해 여론의 흐름을 분석했다. 행정관리국도 여론수집 활동을 주기적으로 벌였다.

대구시는 처음부터 시내버스 노사간의 임금협상에 '불개입'을 선언했다. 노사가 암묵적으로 동조해 파업으로 나오고 그 때문에 시민들의 불편이 예상돼도 '이번에는 원칙을 지키겠다'는 의사 표시를 되풀이했다.

과거엔 파업 돌입 직전, 임금인상분 보전을 위한 재정지원을 약속하는 등으로 파국을 모면하는 방식을 쓰곤 했다. 파업 초기, 한 관계자는 "일단 큰 소리는 쳤지만 여론이 너무 신경 쓰인다"며 불안해 했다.

과거처럼 '시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대구시는 뭐하느냐'는 식의 일방적인 여론 앞에서는 굴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론은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이 참에 환부를 수술해야 한다'가 대세를 이뤘다.

한 네티즌은 "불편하기는 하나 이번 파업으로 시민들의 세금이 버스회사 적자 메꾸기와 임금 인상에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우는 아이 젖주기 식의 해결책이 계속돼선 안된다"고 글을 올렸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시민들 사이에서 '촛불시위.손해배상청구 불사' 등의 움직임이 나타난 것도 노사 양측을 압박했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표출된 시민의식은 앞으로 시내버스 준공영제 도입에서도 어느 일방을 살찌우는 불합리한 제도가 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기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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