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모리는 '페루의 박정희' - 과감한 인질구출작전으로 인기 치솟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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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대통령-. 그는 대통령제의 장점이면서 잘못 사용할 경우 독약이 되기도 하는 강력한 권력을 능란하게,때로는 무리까지 범해가며 최대한 행사하는 정치인이다.

후지모리 대통령(사진)은 지난해 헌법해석을 바꿈으로써 2000년 3선고지에 도전하는 길을 열었다.기자회견등에서 그가 가장 즐겨 쓰는 말의 하나가'페루의 근대화'다.그래서 그런지 그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조국근대화'를 단골구호로 삼았던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많은 인물이다.극심한 빈부격차에 시달리는 페루의 95년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은 3천6백달러. 이번 인질사건의 성공적인 결말은 결단력과 타이밍 선택능력,사태이후의 예견력에서 매스컴.대중을 의식한 정치적 제스처 구사에 이르기까지 지도자로서 후지모리의 장점이 그대로 돋보인 한판 승부였다.

장기간에 걸친 인질사태에서 그를 향해 조여든 주변상황은 결코 간단치 않았다.우선 인질들의 생명을 중요시하면서도 동시에 테러범에게는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는 스스로의 기존노선과 국제사회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했다.미국등 서방국의 테러엄단 요구는 외국자본 유치라는 페루의 경제적 이해와 직결돼 있었다.사건의 한 당사자인 일본은 최대의 경제원조국이기도 했다.아니나 다를까.국내에서도 인질극이 장기화하면서 여론이 갈리고 그의 정치력에 대한 비판과 회의가 강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후지모리는 23일 전격적인 무력진압으로 이같은 난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했다.후지모리의 대통령직 3선을“환상도 망상도 아닌 악몽”이라고 비판했던 현지신문(엑스프레소)은 사건이 해결된 다음날“페루는 테러범에게 굴복하지 않았다”며 환호했다.일본이 감사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페루 직접투자액 잔액이 8억3천6백만달러에 이르는 미국은 투자를 더욱 늘릴 태세다.일거에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90년7월 무명의 정치신인으로 구정치인에 대한 국민들의 환멸에 따른 반사이익을 거둬 당선된 후지모리도 처음에는 현실정치의 벽을 절감해야 했다.중앙정계에는 아무런 기반도 없었다.마키아벨리즘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밀어붙이기식 정치는 이같은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한 극약처방이었다.

그는 92년4월 부패와 테러를 추방하겠다는 명분으로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국회문을 닫고 헌정을 중단시킨 후 이듬해 총선을 실시해 연속재임을 허용하는 내용으로 헌법을 바꾸는데 성공했다.새 헌법에 따라 95년 재선(5년 임기)에 성공한 후지모리는 지난해 새 헌법의 3선금지조항이 자신에게는 소급적용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헌법해석안을 관철해 3선고지의 벽을 뛰어넘었다. 〈관계기사 10면〉 그렇다고 후지모리의 리더십에 장애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빈부격차 해소와 인권상황 개선은 그로선 여전히 풀기 어려운 과제다.페루의 경제성장률은 94년 13.2%에서 95년 6.9%,지난해는 2%대로 떨어졌다.

역경에 강한 후지모리의 리더십이 역경속의 페루에서 겪게될 도전은 아직도 적지않은 것이다. [도쿄=노재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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