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未착공 고속철도 재검토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미국 WJE사의 경부고속철도 시험선 구간 안전진단 결과 조사대상의 70.6%가 부실한 것으로 드러나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사실 이런 사태는 이미 출발 당시부터 예견됐던 일로 정치논리에 떼밀린 졸속행정과 주먹구구식 사업계획및 사업관리,그리고 고질적 부실공사 관행이 빚어낸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여당은 89년 기술조사에 착수한지 불과 3년뒤인 92년 6월 공사를 시작했다.당시 충분한 토론과정이 없었음은 물론 실시설계와 부지매입도 안된 상태였는데 정부.여당은 92년 12월의 대통령선거를 겨냥해 다음 정권으로 넘겨도 좋

을 대역사를 서둘러 착공했다.

외국의 고속철도가 7~10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공사에 들어간 것에 비하면 너무나 무리한 졸속행정이었다.

그러다보니 지도상에 선만 그었을 뿐 답사와 예비측량은 형식적으로 끝내고 말아 가장 중요한 절차인 기본설계가 제대로 수행되지 않았고,그 결과 대전.대구역사의 지하화나 경주노선및 상리터널노선의 수정등 잦은 사업계획 변경으로

처음부터 파행을 면치 못했다.

한편 저가낙찰로 인한 부실공사는 이미 예견됐던 바로 이번에 문제가 된 4-1공구의 경우 낙찰가가 예정가의 52.3%에 불과해 원천적으로 부실공사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국회에서도 수차례나 이 점을 지적하고 철저한 감리를 촉구한바 있다.

결국 이번의 안전진단으로 그동안 정부가 애써 감추던 문제점이 한꺼번에 노출됐으며 우리의 기술수준이 아직은 고속철도의 노반설계를 소화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나는 그동안 경부고속철도 건설을 현재와 같은 졸속강행 방식으로 추진할 경우 안전성과 경제성을 확보할 수 없음을 지적하고,이미 착공한 서울~대전까지만 우선 개통해 서울~대전간 경부선의 적체 해소에 활용하고,나머지 구간은 시간적 여유

를 갖고 전면 재검토해 신중하게 추진할 것을 주장해 왔다.그리고 경부축의 교통정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부산.광양항의 투포트 시스템을 중심으로 한 권역별 거점항만체제를 육성하고 서해안고속도로를 조기완공함으로써 교통수요를 분산시키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임을 주장해 왔다.

비록 늦었지만,이번에 한국고속철도공단 이사장의 결단으로 이 정도의 진실이라도 밝혀진 것은 퍽 다행스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국가예산의 탕진을 막고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중지를 모아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한화갑〈국회의원.국민회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