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사면의 한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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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 역사상 임기중 사망한 대통령은 모두 8명이다.링컨.가필드.매킨리.케네디 등 4명은 암살됐고,해리슨.테일러.하딩.루스벨트 등 4명은 자연사했다.리처드 닉슨은 재임중 스스로 물러난 유일한 대통령이었다.한데 역대 대통령중'유일한'

기록을 가진 사람은 또 하나 있다.제럴드 포드다.그는 선거를 치르지 않고 부통령과 대통령을 지낸 유일한 사람이었다.

닉슨과 포드는 워터게이트 사건과 사면으로 긴밀하게 묶여져 있다.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부분이 많고,그 까닭에 지금까지도 뒷말이 무성하다.의문의 시발은 73년 닉슨이 포드를 애그뉴의 후임 부통령에 지명했

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무엇 보다 승계서열(하원의장)을 무시한 전혀 예상치 못한 지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0년후인 83년 여름 미국의 한 시사잡지에는 주목할만한 기사가 실렸다.워터게이트로 한창 시끄럽던 74년 9월7일 닉슨이 대통령에 취임한지 한달도 채 안된 포드에게 전화를 걸어“곧바로 사면해주지 않으면 사면을 조건으로 당

신을 부통령에 지명했다는 사실을 공표하겠다”고 협박했다는 기사였다.

물론 포드는 펄쩍 뛰며 부인했고,닉슨은 노 코멘트로 일관했다.하지만 그 기사가 꽤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진 까닭은 포드가 7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정하고서도 62%의 국민이 반대(찬성은 31%)하는 사면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닉슨만 사면해주고 그의 측근 피고인중 3명은 감옥에 보낸 것도 두 사람간의 묵계를 뒷받침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어쨌든 포드가 적절한 시기를 택해 모두 사면했거나,닉슨이 측근과 함께 사면받기 위해 사면을 거부했다면 그들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훨씬 달라졌을는지도 모른다.

사면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기는 하지만 여러가지 상황과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감행했을 때는 역사에 또 하나의 오점을 남길 수도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사면이야기가 고개를 쳐

들고 있다.두 단체의 여론조사는 닉슨의 경우와 거의 같은 조사대상 62.6%가 사면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당사자의 태도나 국민정서 등 분위기가 성숙될 때까지는 거론조차 신중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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