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무림>4. 무림 청문 점입가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같은 시각 중원에서 10만리쯤 떨어진 곳에서 대중검자는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그는 공삼대계에 대해 생각중이었다.

“절묘하군.절묘해.다른 누구도 이렇게까진 못 짜맞출 일이야.”

한보문 문주인 황금돈(黃金豚) 정배짱이 무림청문회중 실수를 가장해 생살부(生殺簿)의 일부를 흘린 일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사사건건 자신의 발목을 잡아왔던 3인방의 반골거사며 구룡중 하나인 덕룡공,자민단의 부단주 용환수사등 신한국방.새국민회.자민단의 핵심고수 3인이 바로 정배짱이 밝힌 이름이었다.

이들 3인이 치명적 상처를 입고 재기불능에 빠질 경우 대중검자로선 신한국방이나 자민단에 비해 훨씬 남는 장사를 한 셈이었다.

무림청문회는 생각대로 풀려가고 있었다.회창객은 지금쯤 멋도 모르고 미소를 짓고 있으리라.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큰 오산이었는지 곧 깨닫게 되리라.이미 대중검자는 회창객의 무공내력을 샅샅이 조사한 뒤였다.

그의 춘추필법은 아직 미완성이었다.순간순간 초식의 흐름이 끊어지는가 하면 전혀 위력없는 엉뚱한 초식이 펼쳐지기도 했다.물론 최근들어 급속도로 그의 무공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회창객의 무공을 한순간에 깨뜨릴 비책이 대중검자에겐 있었다.

이 꼴로 청문회가 난장판으로 계속되면 전 강호인의 분노의 화살이 신한국방 방주인 회창객에게 쏠릴 것이고 그때 자신이 준비해둔 비장의 공격이 그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놓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회창객에 대해 엄살을 떨어온 것은 오로지 결정적 순간을 기다려왔기 때문임을 미련한 신한국방 무리들은 그때 비로소 알 것이었다.

이미 만신창이가 돼 어떤 방법으로도 회생할 길이 없어진 재여무림의 몰락을 뒤늦게 한탄하면서.

정배짱의 철면공은 경천동지의 위력을 발휘하고…

오전6시30분.정배짱은 정확히 제시간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늘이 무림청문회가 열리는 날이던가.불나방같은 작자들.뻔히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머릿수만 믿고 덤벼들기는.그는 가볍게 하품을 했다.

그가 아는 18명 무림의원들의 무공실력으로는 자신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것이었다.정배짱은 얼마전 그에게 전해진 쪽지를 다시 한번 읽어내렸다.

'약속은 지켜질 것이오.'

수신자도 발신자도 없었다.밑도 끝도 없는 글 한줄이 달랑 적힌

쪽지였다.정배짱은 뜻모를 미소와 함께 두어번 고개를 끄덕인뒤 쪽지를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어 삼켰다.잠시후면 청문회가 시작될 것이다.

정배짱은 호신무공인 철면공(鐵面功)을 얼굴 가득 끌어올렸다.

“똑바로 좀 찔러봐.그걸 공격이라고 하는건가.최고수급이라는 무림의원의

무공이 그래서야 되겠어.도대체 무공의 무(武)자나 제대로 아는거야.”

정배짱은 자민단 무림의원 구린(求麟)거사의 공격을 받아내며 큰소리를

쳤다.

하루내내 18명 무림의원들이 18반 무예를 다 쏟아내며 공격을 해댔지만 그의

철면공에는 모기에 물린 것만큼도 충격을 주지 못했다.

정배짱의 철면공은 자신의 독특한 무공인 황금수(黃金手)에서

비롯됐다.황금수는 황금을 만들고,뿌리고,지키는데 쓰이는 상벌(商閥)특유의

무예로 특히 수비무공으론 천하무적이었다.

물론 정직검(劍)이나 청렴도(刀)같은 무공을 만나면 그 즉시 박살이 나고

말겠지만 현 무림천하에는 이 무공을 익힌 자가 전무했다.

정직검과 청렴도는 익히는데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단한번 사악한 무공의

유혹에 빠지기만 해도 평생 쌓아올린 내공을 한순간에 잃고마는 극기의

무공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초등무학시절부터 자기자식만은 잘 가르쳐 달라고 부모들이

무공교두에게 황금을 뿌려대는 것을 보고 자라는게 오늘 무림아이들의

현실이 아닌가.

이런 토양에선 청렴도나 정직검을 익힌 자가 나올리 만무했다.

정배짱이 자신의 철면공에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신한국방 무림의원인 신범검사가 첫 칼을 뽑은 이래 지루한

차륜전(車輪戰:돌아가면서 하는 싸움)이 이어졌다.“감옥에서 10년쯤 더 푹

썩어야 겠군” “너 내년에 또 청문회에 나오고 싶나.” 끄떡도 않는

정배짱의 모습에 화가 난 몇몇

무림의원들의 욕설이 이어지자 정배짱의 미간이 한차례 꿈틀거렸다.

그러나 곧 그는 쪽지의 내용을 떠올리며 치미는 화를 눌렀다.

오후들어 무림의원끼리 치고받느라 난리치는 진풍경이 연출되자 정배짱은

하마터면 배꼽을 쥐고 웃을 뻔했다.이놈들아 너희들의 상대는 나야

나.자중지란까지 벌인 무림의원들은 정배짱의 호언대로 끝내 그의 털오라기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심지

어 두눈을 감고 묶인채로 호신강기(護身강氣:신체를 지키기 위해 내공으로

몸주위에 만든 방어막)만 펼치고 있는 정배짱의 반탄진기(返彈眞氣:적의

공격을 그대로 되돌려보내는 무공)에 거꾸로 상처를 입기도 했다.다음날

이어진 정배짱의 몸종

황금노(黃金奴)종국시종장에 대한 청문회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종국시종장은 정배짱에게 전수받은 묵묵부답확인불가공을 적절히 구사했고

무림의원들은 이것마저 깨뜨리지 못했다.종국시종장은 무림의원들의 공격을

막지 않고 그대로 격중당해 정배짱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싶은

유혹을 청문회 내내 견뎌내야 했다.정배짱이 두려워서는 절대 아니었다.정배짱과 연결된 아주 큰 힘 때문이었다.그것은 황금결사의 힘이었다.여야무림 구분없이 거대하게

연결된 이 황금의 힘은 아직 절대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전력을 다해

수비하지 않았다간 그힘은 결코 그를 가만 놔두지 않을 터였다.정배짱과 결탁한 3개 전장(錢庄)의 주인들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무림청문회는 전 강호인의 염원과는 무관하게 결국 그 힘의 생각대로 끌려가게 될 것이었다. 〈다음은'구룡난투'편 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