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직불금 파문, 감사원 개혁 계기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직불금 문제가 크게 불거진 배경의 하나는 감사원이다. 감사원이 이미 오래전 부당한 지급 현황을 감사해 놓고서도 감사 결과를 은폐·축소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정조사까지 벌어졌다. 그 결과 지난 10월 말 감사원의 최고위직 감사위원들이 일괄사표를 제출했다. 감사원장이 이들 고위직의 교체 방안을 담은 인사제청안을 대통령에게 제출해 곧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단행될 예정이다. 6명의 감사위원 가운데 4명 안팎이 바뀔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래저래 감사원은 지금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감사원은 헌법에서 그 구성과 조직 및 권한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기관이다. 따라서 감사원을 없애거나 감사원의 소속을 변경시키려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감사원은 독립기관이기도 하다. 감사원법 제2조도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규정하여 직무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다. 비록 소속은 대통령 소속이지만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감사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기관인 셈이다.

 감사위원 등 감사원 공무원들에게 고도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이유가 바로 이 막강한 권력 때문이다. 그러나 감사원이 이러한 취지에 맞게 업무를 잘 처리하고 있느냐에 많은 국민이 의혹의 눈길을 보낼 수밖에 없는 일이 꼬리를 물고 발생했다.

지난 정권하에서 쌀 직불금 문제를 은폐·축소하려 한 데 이어, 새 대통령 당선인이 확정되고 난 올해 초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대한 감사활동 수시보고를 활성화한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또한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 5월 말에 느닷없이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해 예비조사를 하고 6월 초에 실지감사까지 감행한 것도 권력의 눈치를 본 ‘정치감사’라는 논란을 불러왔다. 그 어떤 기관보다 권력에 초연하고 독립성과 중립성을 생명처럼 여기며 진중해야 할 감사원이, 오히려 권력의 눈치를 보고 권력에 줄을 서는 데 누구보다 민감하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감사원을 감사하라는 요구가 나올 만하다.

이러한 감사원의 위기를 수습할 대안은 무엇인가. 감사원은 스스로 내부 조직을 전면 개편하겠다고 나섰다. 공공기관감사국을 신설해 공공기관에 대한 사정 및 감사기능을 강화하고, 감사청구조사단을 감사청구조사국으로 확대해 국민적 관심 사안을 신속하게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부 노력들은 근원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감사원의 확실한 위상 정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헌을 해서라도 감사원의 소속부터 바꾸어야 한다. 입법·사법·행정부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는 독립기관으로 감사원을 설치해 운영하는 것이 감사원 독립성 확보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근원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독립성 확보 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는 국가인권위원회도 삼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기관이었기에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지금처럼 감사원을 대통령 소속으로 두면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다. 행정부를 감사하는 기구로서의 독립성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독일·프랑스·일본이 감사원을 행정부에 소속시키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삼부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는 독립기관으로 설치·운영해 오고 있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개헌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선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직무수행상의 여러 투명성 확보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국가안보에 직결되는 사안 이외에는 모든 감사 결과를 감사위원회 결정 직후에 인터넷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안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감사원은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고 독립적이며 투명하게 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이어야 한다. 그것이 감사원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