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데가르트 음악 재조명 활발 - 세계최초 여성작곡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역사상 최초의 여성 작곡가로 알려진 힐데가르트 폰 빙겐(1098~1179)의 탄생 9백주년을 앞두고 음반녹음과 기념음악제를 통한 재조명 작업이 한창이다.

87년 창단돼 폴크스바겐.지멘스 재단의 후원을 받으며 쾰른을 본거지로 활동중인 중세음악 전문 앙상블 시쿠엔티아(Sequentia)는 힐데가르트 탄생 9백주년을 맞는 내년까지 75곡의 노래를 담은 '하늘의 계시에 의한 교향곡'을 비롯,그녀가 남긴 작품 전곡을 도이체 하모니아 문디(DHM)레이블로 녹음할 계획을 세워놓았다.시쿠엔티아는 지난 94년'엑스타시의 노래'를 발표,95년 칸 클래식 음반상을 수상하고 96년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바 있다.

또 지난 94년 힐데가르트의 단선율 성가(聖歌)에 월드뮤직풍의 테크노팝 사운드를 가미한'비전'(EMI)을 제작했던 프로듀서 리처드 수더도 두번째 앨범'일루미네이션:성령의 불꽃'(소니 클래시컬)을 새로 선보였다.

뉴에이지 운동과 맞물려 그레고리오 성가붐을 일으켰던 팝그룹 에니그마와 아디에무스의 음반에 이어 출시된'비전'은 발매 직후 16주동안 빌보드 크로스오버 차트 1위에 머무르는 기록을 수립,그때까지만 해도 낯설었던 힐데가르트의 존재를

뚜렷이 각인시켜 주었다.

힐데가르트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음악학.과학사.중세사 연구에 힘입은바 크다.억압적인 중세시대의 상황에서 여성이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매우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하지만 힐데가르트는 결국 교황의 승인을 받아 자신의 계시와 음악을 기록으로 남기는데 성공했다.

'독일의 불가사의''라인강의 예언자'로 불렸던 그는 10명의 자녀중 막내로 태어나 부모가'십일조'로 교회에 바친 몸이 되었다.출생 직후부터 속세와는 단절된 수도원에서 자라나 그의 음악에는 세속에 때묻지 않은 지고(至高)의 순수함과 깨끗한 영혼의 세계가 담겨있다.그는 어려서부터 미래를 예견하는 계시 능력을 발휘해 주위를 놀라게 했고 13세때 수녀가 된후 52세때 독자적인 수녀원을 만들어 신앙공동체를 이끌어갔다.

자기가 설립한 수녀원 성당에서 부를 노래를 직접 작곡한 힐데가르트.지루하게만 느껴지는 그레고리오 성가와 달리 그녀의 음악은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내면의 평화를 주는 신비로운 힘을 간직하고 있다.

넓은 음역과 도약 음정을 금기시했던 중세음악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비교적 자유로운 선율진행을 과감히 구사했기 때문이다.

바로 힐데가르트가 수녀원장으로 있었던 독일 라인강 유역의 빙겐에서는 오는 9월13일부터'힐데가르트 가을축제'가 열린다.내년 3월16일 인근 마인츠 돔 성당에서 그녀의 음악 연주를 곁들인 개막식에 이어 20일까지 마인츠대에서 힐데가

르트 기념 국제학술 심포지엄이 열린다.또 내년 4월17일부터 넉달간 마인츠 돔 성당과 박물관에서는'힐데가르트의 생애와 작품'이라는 주제의 전시회가 열린다.이 행사는 음악가 뿐만 아니라 신학.의학.점성술.문학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힐데가르트의 생애와 업적을 되새기는 작업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