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서울 황홀한 야경 아래, 한양 성곽 수줍은 자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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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이 넘도록 땅속에 묻혀 있던 한양 도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대문축구장 아래서 123m에 달하는 조선시대의 성곽 아랫부분이 발굴돼 다시 햇빛을 본 것이다. 특히 시선을 끄는 것은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화강석 아치 구조의 이간수문(二間水門)이다. 이간수문은 남산과 장충동에서 흘러내린 물을 성 밖으로 빼내기 위해 만든 수문이다. 치성(雉城) 흔적도 처음으로 발견됐다. 근접한 적을 공격하기 위해 성벽을 돌출시킨 것이 치성인데 한양 성곽의 치성은 지금까지는 문헌에만 기록이 남아 있었다. 서울시는 이 자리에 ‘동대문 디자인플라자&파크’를 조성하기 위해 사전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1910년 제작된 경성용산시가도의 일부. 오간수교 아래 청계천이 흐른다. 붉은 선으로 표시된 것은 왼쪽이 철거된 동대문 야구장, 오른쪽이 축구장.

일제는 1926년 흥인지문에서 광희문 사이의 성곽을 허물고 주변 수로를 매립해 경성운동장을 건립했다. 경성운동장은 광복 후 서울운동장과 동대문운동장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각종 경기와 행사가 치러진 근현대사의 공간으로 변신했다. 일제는 왜 이곳에 대규모 운동장을 지었을까.

조선 군대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운동장은 수도를 방위하고 국왕의 시위와 지방군의 훈련 및 치안을 담당하는 하도감이 있던 곳이다. 고종 18년에 설치된 별기군의 훈련 장소였고 차별대우에 불만을 품은 구식 군대가 일본인 교관 등을 살해한 임오군란의 발생지다. 종묘의 허리를 끊어 도로를 내고 경복궁 안에 총독부를 지은 일제가 이곳을 조선인의 기억에서 지우고자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림막 뒤로 동대문 의류상가의 고층 빌딩들이 솟아 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맞아 많은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하지만 위기를 지혜롭게 넘기면 더 밝은 미래가 온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때 절망보다는 강한 의지와 희망을 가슴에 품자. 튼튼하고 아름다운 조선의 성곽은 어두운 땅속에서도 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사진·글 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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