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두려운 건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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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호 04면

GM대우차 근로자 김기복씨는 휴업이 길어지자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대리운전 기사를 하고 있다(왼쪽 큰 사진). 김씨가 휴업 중 받는 월급 118만원(위 작은 사진)은 한 달 지출 200만원(아래 작은 사진)에 턱없이 모자란다. 신동연 기자

김기복씨는 GM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 출근한 게 석 달 전이라고 했다. 지난 24일로 김씨가 근무하던 차체AS부가 휴업한 지 정확히 3개월이 된 탓이다. 대신 김씨는 10월 말부터 저녁마다 인천 시내로 출근한다. 정확히 말해 그의 ‘근무지’는 서구청·석남동·연희동 등을 운행하는 시내버스 안이다. 그는 지금 대리운전 기사로 일한다. 김씨는 “평소엔 현금입출금기(ATM) 영업소 안이나 건물 통로에서 대기하다 날씨가 추울 때는 버스를 옮겨 타고 다니면서 ‘콜’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성과급을 합쳐 연봉 5700만원을 받았던 김씨의 삶은 갑자기 고단해졌다.

20년간 취직→해고→복직→휴업 넘나든 GM대우차 김기복씨

22일부터 전 공장 문 닫아
‘1,181,626원’. 10일 김씨 통장에 들어온 월급이다. 김씨는 “월급 160만원 가운데 세금·연금·대출이자를 떼고 나면 120만원이 되지 않는다. 보너스가 나오는 달이라야 200만원이 넘는다”고 푸념했다. 회사는 휴업 이후 월 평균임금의 70%를 지급하고 있다. 이 돈으로 김씨네 다섯 식구가 생활해야 한다.

이런 와중에 건설회사에 다니는 친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6개월치 월급이 밀렸다는 형이 어렵게 내민 손을 거절할 수 없어 200만원을 만들어 보내줬다. “아파트 관리비 10만원, 급식비 10만원, 은행 빚 17만원 등 한 달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돈이 201만2644원입니다. 중학교 다니는 큰아이는 학원도 안 보내는데 사정이 이렇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마이너스가 뻔해요.”

김씨가 근무하던 차체AS부는 에스페로·씨에로·라노스 같은 단종 차량의 애프터서비스를 맡았던 곳. 채산성이 낮다고 판단한 회사는 이 부서를 해외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토스카 후속 모델인 Vs300 라인을 깔기로 결정했다. 이 때문에 김씨는 다른 동료보다 2개월 이상 빨리 일손을 놓게 됐다. “추석 연휴 이후 쉬었어요. 처음엔 ‘한두 달이면 복직되겠지’ 싶었는데 ‘나도 놀고 있다’는 전화가 하나 둘 걸려오는 겁니다. 이때부터 겁이 덜컥 나더군요.”

GM대우는 22일 회사 문을 완전히 닫았다. 현장은 물론 사무직 역시 “연월차휴가를 모두 소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회사는 내년 1월 4일까지 휴업해 3만3000대가량을 감산할 예정이다.

김씨네의 팍팍한 살림살이는 냉장고에서 엿볼 수 있었다. 냉장 칸은 배추김치·동치미·깍두기 같은 김장김치로 차 있고, 음료수 칸엔 우유 한 팩이 고작이다. 막내아들 종훈(7)이가 좋아한다는 치즈나 과자도 눈에 띄지 않는다. 기자가 찾아왔다고 귤 몇 개와 매실차를 내온 김씨의 아내 안승례(33)씨는 “고향인 안성에서 김치와 쌀을 보내줘 고마울 따름”이라며 작게 웃었다. 안씨는 “3개월 넘게 외식도, 쇼핑도 안 했는데 불평 한번 안 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처음엔 우울증으로 신경정신과 신세까지 졌다는 안씨는 지금은 꽤 안정을 찾은 표정이었다.

김씨는 바람 빠진 풍선마냥 지낼 수만은 없었다. 부지런히 일자리를 찾은 끝에 대리운전 일을 구했다. 지난달 초에는 횡단보도를 지나다 화물차에 부딪쳐 한 달간 입원하기도 했다. 선납금 20만원, 보험료·인터넷 사용료 7만원을 떼고 그가 이달에 번 돈은 89만4000원.

다부진 외모답게 악착같이 운전대를 잡을 것 같은 김씨지만 저녁 7시에 일을 시작해 12시면 끝낸다고 했다. 그가 손님이 몰리는 ‘피크타임’ 무렵 퇴근하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시내 유흥가에 나가 보면 장갑 끼고 마스크 한 대리운전 기사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물어보지 않아도 그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짐작이 갑니다. 그들한테 오는 콜을 빼앗는다고 생각하면 더 일할 수가 없어요. 저는 (크게 줄어들었어도) 월급을 받잖아요. 그러니까…(일찍 퇴근합니다).”

휴업 기간 더 늘어날 수도
김씨가 인천에 자리를 잡은 것은 88년이다. 경기도 안성생인 그는 농사짓기가 지긋지긋해 군대를 제대하면서 바로 인천으로 올라왔다. 가구회사·사출공장을 다니다 직업훈련원을 거쳐 이듬해 9월 대우자동차(현 GM대우)에 입사했다. 도장부·품질관리부·조립부 등에서 일하면서 착실히 모은 돈으로 94년 인천 부개동에 18평 아파트를 마련하고 이듬해엔 결혼도 했다.

모든 게 순탄한 듯 보였지만 2001년 2월 19일 대우 부도 사태로 회사가 1750명을 대량 해고하면서 그의 보금자리는 산산조각이 났다. “날짜도 잊혀지지 않아요.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적힌 해고통지서와 퇴직금 2200만원이 적힌 명세서가 등기우편으로 날아왔어요. ‘해고의 기준과 원칙이 뭐냐’고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도 해 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안 해 본 일이 없다. 그러나 잘된 일도 없다. 5000만원 가지고 문구점을 했다가 4700만원을 날리고, 2400만원을 투자해 국수집을 냈다가 900만원을 까먹었다. 중간에 택시기사도 해 봤지만 4개월을 채우지 못했다. 결국 아파트를 팔고 효성동 연립주택으로 옮겼는데 이 역시 법원 경매로 넘어갔다. 2004년 9월 복직할 때까지 3년7개월간 1억여원을 까먹어 김씨 부부는 신용불량자 신세였다. 그는 겨우 올해 초에야 신불자 신세를 면했다(지금도 안씨는 신용불량자로 월 17만원씩 은행 빚을 갚아야 하는 처지다).

김씨네를 벼랑으로 몬 것도, 그 끝에서 구원한 것도 직장이다. 2004년 9월 복직한 그는 금세 안정을 찾았다. 2006년엔 16평짜리 사원아파트에 입주했다. “그때 깨달았지요. 가장 두려운 것은 일자리가 사라지는 겁니다. 지금도 하루에 몇 번씩 휴직 상태인 동료끼리 ‘조만간 정리해고가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전화를 주고받아요. 공장 문 닫는 것만은 나라에서라도 막아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무엇보다 노동조합이 일자리를 지키는 데 힘을 모아야 합니다.”

김씨가 일터로 돌아갈 날은 언제일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GM대우는 지난해 완성차 93만186대를 만들어 82만9000여 대(86.4%)를 수출했다. 150여 수출국 경제 사정이 회사 성적표를 가늠한다. 세계적으로 경기 한파가 몰아치면서 자동차 수요는 급감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회사 김종도 전무는 “재고 상황을 감안해 휴업 기간이 길어지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며 “조업 재개는 연초에 다시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저녁 6시가 넘자 벽시계로 힐끗힐끗 눈을 옮기던 김씨는 “이제 출근해야 할 시간”이라며 외투와 장갑을 주섬주섬 챙겼다. ‘크리스마스 이브인데도 출근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씨는 “그래서 오늘 아침에 (아이들 선물 사라고) 아내에게 5만원을 줬다”며 “3남매의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를 볼 때마다 저절로 희망이 솟는다”며 현관문을 나섰다. 이날 안씨는 남편이 준 돈으로 신발 두 켤레를 마련했다. 맏이에게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그리고 김씨는 4만7000원을 벌었다. 콜이 분주하게 오가던 이날도 그는 12시까지만 근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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