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잠 깨어난 일본] 6. 고이즈미 스타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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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개혁추진이 부진한데도 고이즈미 내각에 대한 일반의 지지가 비교적 높다. 그 비결은 뭘까.

우선, 개혁을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한다는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다. 총리 자신은 개혁의지가 굳은데 '개혁저항세력'때문에 개혁이 부진하다고 국민이 생각하게끔 한다. 여당 안에서조차 족(族)의원(농업.도로건설 등 특정부문의 이익을 대변하는 의원) 등이 버티고 있어 총리가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기득권층을 개혁저항세력으로 만들어 놓고, 개혁이라는 슬로건 아래 자신이 이들과 외로이 싸우는 무대를 연출하는 데 천부적인 재주가 있다"고 보는 사카키바라 교수는 고이즈미 총리를 '마키아벨리스트(권모술수에 능한 사람)'로 부른다.

둘째, 정치파벌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총리가 하는 일에 걸림돌로 또 자주 지적되는 게 '오야붕(파벌의 우두머리)'에 의한 파벌정치다. 정부가 내놓은 개혁과제도 오야붕들이 틀어버리면 추진이 불가능한 것이다.

"지난 3년 그의 업적 중 그래도 내놓을 만한 게 파벌정치의 파괴다."(시오다 우시오 평론가)

고이즈미 총리는 인사권.정치자금 등 오야붕의 '핵심역량'을 겨냥해 왔다. 중요 파벌의 오야붕들이 계파의원들 중에서 장관을 지명하던 관행을 깨고 고이즈미 총리는 아예 오야붕의 의견을 무시하고 조각했고, 오야붕이 모금해 정치자금을 나누어 주던 것을 정치자금법('정당조성법')을 바꿔 정당의 간사가 배분토록 했다.

셋째, 고도의 정치적 수완이다. 심하게는 그를 포퓰리스트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선거 때만 되면 큰 '물건'을 내놓는다. 인기가 40%대로 내려갔던 2002년 9월에 갑자기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고 피랍자들을 데려 왔다. 두달 뒤 보궐선거에서 압승, 중의원에서 자민당이 단독 과반수를 차지했다. 2003년 가을에는 '개혁선언''개혁 내각' 을 내세워 중의원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정치 전문가들이 '고이즈미 내각이 또 뭔가 일을 벌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을 무렵, 고이즈미 총리가 내놓은 카드는 북한 재방문과 피랍자 가족의 일본 귀환이었다. 고이즈미 내각 지지도는 다시 50%를 넘어섰다. 오는 7월에 참의원 선거가 있다. 만일 여기서 자민당이 단독으로 참의원 과반수를 이루면 그의 총리직은 2006년 가을까지 보장된다. 그 힘을 어느 정도 개혁에 쏟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김정수 경제연구소장, 양재찬.신혜경 전문기자, 이종태.김광기 기자, 김현기 도쿄 특파원

*** 바로잡습니다

6월 1일자 5면 '고이즈미 내각의 개혁공정표'에서 '20010'년은 '2010'년의 잘못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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