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교육은 氣育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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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교육에 관한 일가견을 책으로 펴낸 미국 퍼스트레이디 힐러리가 올해 그래미상(賞)을 차지했다.지난주 남편이 목발을 짚고 옐친 러시아대통령을 만나러 유럽으로 떠날 때 힐러리는 외동딸 첼시의 손목을 잡고 검은 대륙 아프리카로 날았다.

힐러리의'교육마을론'(원제:It Takes a Village)이'자식을 키우려면 좋은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본뜬 때문이리라.

미국 10대들의 책가방 속엔 콘돔과 마약,그리고 총이 들어있기 일쑤다.자신의 졸업장도 읽지 못하고 애밴 아이만 느는 교육이 마을 탓이라는 것이다.TV가 원흉으로 찍힌다.한국 중학생의 여가시간 TV시청률이 세계1위로 밝혀졌다.TV

보는게 유일한 낙이라니,TV가 그들의'마을'아닌가.

그나마 바보상자를 틀면 무너져내리는 소리 뿐이다.어린이가 쓴'대통령아저씨 너무 창피해요'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판이다.수의(囚衣)걸친 전직대통령이 쑥 들어가더니 현직 대통령부자의 고장난 모습이 비친다.이쯤되면 학교가 아니라'마을'이

고장난 것이다.

우리네 맹모삼천(孟母三遷)은 힐러리의 마을론보다 훨씬 앞선다.맹자 어머니가 조용한 산골에 집을 정하자 묘지곁이라 어린 맹자가 장사(葬事)흉내만 낸다.마을 중심으로 이사했더니 이번에는 시전(市廛)장사꾼 흥정하는 꼴을 보인다.세번째

글방(학교) 가까이 이사하고서야 맹자는 책을 벗삼더라는 이야기다.

교육개혁안이 사흘이 멀다하고 튀어나오지만 마을을 고치지 않고서는 공염불이다.국책사업을 차려놓고 은행과 감옥을 들락거리며 떼부자가 되는 아버지에게서 아들이 배우는게 무엇이겠는가.아첨꾼과 권력에 핏발선 사람들의 담배연기 자욱한 사랑방

이 30년 넘게 산 집이라면 거기 물들지 않을 아들이 어디 있겠는가.지구촌 사이버시대라 현대의 맹모는 옮겨갈 마을도 없다.

얼마전 한 돈많은 이가 농장을 사 아들에게 물려주려 땅 넓은 미국으로

갔다.한 농장을 둘러보다 주인으로부터 농장을 내놓은 이유를 듣고

놀랐다.'명퇴'(名退)하고 싶은데 아들이 마다한다는 것이다.큰 재산을 거저 가지라는데도“내가 번 재산이 아닙니다.팔아서 아버지가 쓰세요.”

아들은 하버드대를 나왔지만 네팔에서 구도자의 고행(苦行)길이라

거지행색이라면서 한국의 아버지와 아들이 부럽다는 표정이었다.하지만 제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아들의 고집은 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식 교육의 산물이다.라이언 킹처럼 벼랑에 떨어져 살아오름을 자랑스레 여긴다.홀로서기가 미국 교육이라면 일본식은 남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지 말자다.한국식 교육이념은 기죽지 말자다.손자에게 12억원짜리 집을 사주는 사람은'기는 세살적부터'의 신봉자인가.'소통령'사태가 코앞에서 터질 때까지 자식의 기를 누를 수 없는 것이 부정(父情)이다.아니면 과외비도 없이 대권 수업레슨을 준 것인가.

과외비는 보통사람들의 자식 기 살리기 비용이다.공교육예산보다 5조원이 더 많다는 사교육비는'기육(氣育)'을 위해 짜낸 어버이들의

고혈이다.홀로서기 교육은 개성과 창의로 리더십을,폐 안 끼치는 불개미처럼 따르는 폴로워십(followership)을 기르지만 한국식 기 살리기는 좀스러운 동아리짓기,킨십(kinship)을 벗어나지 못한다.버팀목만 떼면 맥없이 무너진다.저임(低賃)만으로 버틴 경쟁력의 뒷걸음질이나 레임덕에 맞춰 불거져나온 대통령부자 사태가 이를 입증한다.

지금은 누가 얼마나 먹었느냐를 캐는 계절이다.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묻기보다 누가 무엇을 잡느냐에 달려 있다.그리고 잊는다.달달 외운 단답형(短答型)기교육 탓이다.이제는 마을의 기를 살릴 때가 왔다.그렇지 않으면 밀리는 경쟁력도,되풀이되는

한국형'사태신드롬'도 치유할 수 없다. 최규장〈在美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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