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서 한보 신용조작 - 본사취재팀, 은행 신용평가조사서 입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은행들이 한보그룹 대출과정에서 여신 승인의 주요 기초자료가 되는 기업체 신용평가 점수를 임의로 조작한 의혹이 드러나 검찰이 본격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이같은 신용평점 상향 조작이 은행장을 비롯한 은행간부들의 업무상배임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대검 중앙수사부(부장 沈在淪검사장)는 31일 시중은행 여신업무 담당자들을 소환,조사한 결과

이같은 사실을 밝혀내고 신용평가서 작성등 대출심사 과정에서 은행장들이 평가 결과 조작을 지시했는지 여부를 밝히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본사 취재팀이 입수한 제일은행의 한보철강및 한보건설에 대한 신용조사서에 따르면 95년말 회계결

산을 토대로 평가한 한보철강의 재무구조.신용도등 기업체 종합평점이 40점을 갓 넘긴 41점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신용평점이 40점 이하일 경우 대출에 지장이 있을 것으로 보고 은행 경영진이 실무자들에게 평가 결과를 높여주도록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7월말 작성된 제일은행의 자료에는 계량적 평가가 가능한 자본구성.수익성.유동성.안정성등 재무상태는 모두 최하점인 E등급인 반면 은행 임의로 평가가 가능한 은행과의 관계,경영자 능력및 인격등의 항목에선 최고점인 A나 B등급으

로 기재돼 있어 이같은 의혹을 더욱 짙게 하고 있다.

당시 제일은행 여신총괄부 심사역 金모(44)씨는 검찰에서“섬유센터 지점을 통해 올라온 대출신청서를 심사할 때 부채비율이 8백%를 웃도는등 재무구조가 열악했으나 은행 고위층이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지시,거역할 수 없어 타당의견으로

작성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또 대출심사업무를 총괄한 제일은행 박석태(朴錫台)상무로부터“96년도 기업체 평가조사 결과 부채비율 과다등으로 부실징후 기업 선정 대상이었으나 은행장의 승인을 거쳐 지정 대상에서 제외시켰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검찰은 이같은 사례가 제일은행 외에도 있었을 것으로 보고 외환.조흥.산업은행등의 심사분석 관계자를 불러 조사하고 있다.제일은행은 이 신용조사 결과등을 근거로 한보의 자금사정이 급격히 악화된 96년9월부터 네차례에 걸쳐 모두 2천여

억원의 자금을 집중적으로 대출해준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제일은행측은 이에 대해 “한보에 대한 대출은 문제의 신용평가조사서가 반영된 여신심사기준표에서 대출적격업체로 판정돼 대출이 이루어졌다”고 해명했다. 〈예영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