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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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용돈이라는 말에 화가 난 나는 나도 모르게 칼을 잡은 손에 힘을 더하였다.그 바람에 칼끝이 과외 선생의 목덜미를 살짝 파고 들어가 붉은 피가 조금 비어져 나왔다.

“아,아야.그,그럼 뭘 원하는 거야?”

과외선생이 목을 앞으로 수그리며 다급하게 물었다.

“지금까지 나에게서 받아간 과외비,아니 우리 부모에게서 받아간 과외비 다 내놔.한달에 백오십만원이었으니 6개월이면 구백만원이구먼.그 이상도 그 이하도 요구하지 않아.”

“그,그건 합법적인 내 노동의 대가인데 왜 너에게 내줘?”

“합법적 좋아하네.세금 한푼 안 내면서 합법적이라구?그런 과외 앞에는 불법이라는 말이 붙는 거 몰라?내가 경찰에 신고만 하면 네가 어떻게 되는지 알지? 그러고도 합법적이라구?”

“합법적이라는 말은 적어도 내가 도적질은 하지 않았다는 뜻이야.구두로 계약한대로 성실하게 가르치고 정당하게 그 대가로 받은 돈이란 말이야.”

“그렇게 불법과외로 돈을 버는 너 같은 인간들 때문에 우리나라 교육이 엉망이 되고 있잖아.한국의 부모들은 뼈빠지게 벌어도 과외비 대기가 벅차기 그지없어.내가 두 과목 과외밖에 하지 않는데도 우리 부모 등이 휠 지경이야.너는 우리나라

교육풍토를 흐려놓는 미꾸라지같은 존재야.”

“우리나라 교육이 엉망이 된 이유가 우리같은 인간들에게만 있는 거야? 이미 구조적으로 잘못되어 있는데 어떡할 거야? 너나 네 부모도 어쩔 수 없이 나같은 사람을 필요로 했던 거 아냐? 내 덕택에 네 수학 성적도 올라갔잖아.”

과외 선생은 칼끝이 목덜미를 겨냥하고 있는데도 쉬이 기가 죽지 않았다.

“사람들이 구조가 잘못되었느니 어쩌고 하며 구조에 핑계를 대면서 자기 합리화를 꾀하곤 하지.구조가 잘못되어 있어도 혼자만이라도 똑바로 살 수 없어?”

“그럼 과외 바람이 불어도 너나 네 부모는 나에게 과외를 부탁하지 말았어야 하잖아? 부탁할 때는 언제고,이제 와서 우리나라 교육이 엉망이 된 책임을 물어 과외비를 돌려달라니? 기가 막히군.차라리 그냥 강도짓을 하러 왔으니 구백만원이

고 천만원이고 내놓으라고 하지 그래?”

“아직까지도 네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군.너같은 놈에게는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줄 필요가 없어.무조건 족치고 봐야 해.무릎 꿇어.당장 무릎 꿇어! 칼로 멱따기 전에.”

이미 상처가 난 곳에 칼끝을 대며 윽박지르자 과외 선생이 눈을 질끈 감고 입을 꾹 다문 채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네가 요구하는 구백만원을 내놓지 않으면 날 죽일 거야?”

“그래 죽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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