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구씨 “정부와 마찰 불필요” 고사 … KBO총재, 또 낙하산 타고 내려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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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17대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로 내정됐던 유영구(62)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이 22일 총재직을 돌연 고사했다.

지난 16일 프로야구 사장단이 간담회에서 차기 총재로 추대하기로 한 지 6일 만이다. 이에 따라 KBO 총재 인선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야구인들은 “유 이사장의 총재 추대 과정은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었다. 또다시 낙하산 인사가 총재로 내려오는 게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왜 고사했을까=유 이사장의 측근은 22일 “유 이사장이 ‘정부와 마찰을 빚으면서까지 총재직에 오를 필요가 있겠는가’라며 ‘사장단이 더 좋은 분을 모셔오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총재 추대를 위한 23일 KBO 이사회를 앞두고 그간 제기됐던 정치권 압력설에 유 이사장이 부담을 느꼈던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총재 선출의 최종승인권을 갖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는 유 이사장이 차기 총재로 사장단에 의해 거론된 직후 “사장단 간담회를 통해 언론에 흘려 놓고 마치 유 이사장이 다 된 것처럼 발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총재 결정을 놓고 관례상 하던 사전 논의조차 없었다”며 유감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문체부 입장이 전해지면서 18일 예정됐던 이사회가 23일로 연기됐고, 결국 유 이사장이 ‘맡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후임 총재 인선은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정부에서 새 총재 인선을 서두를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모 야구단 사장은 “이사회가 열리더라도 곧바로 (새 총재) 추대가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올해 중반부터 박종웅 전 의원이 꾸준히 총재 후보로 거론돼 왔다.

◆총재는 어떤 자리=프로야구 규약 제3조 2항에는 ‘총재가 결정하는 지시와 제재는 최종 결정이며, 위원회에 속하는 모든 단체와 개인에 적용된다’고 명시돼 있다. 한국프로야구 운영을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인 KBO 총재의 위상을 설명해 준다. 3년 임기에 연봉은 1억8000만원 선이다. 여기에 월 1000만원가량의 판공비를 받는다.

12월 중순 공식 사임한 16대 신상우 전 총재를 포함, 프로야구는 그간 10명의 총재를 배출했다. 1998년 11대 총재대행으로 시작해 12~14대 총재를 지낸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을 제외하면 모두 정치인 출신이다.

모든 총재가 프로야구 및 스포츠 발전을 취임사로 내세우며 자리에 들어섰지만 비리 사건에 연루돼 물러난 경우(제 5대 이상훈, 제11대 정대철 총재)도 적지 않다. KBO 총재가 정치권 복귀를 위한 임시 방편의 자리로 이용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김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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