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3당합당 전으로 복원했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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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9일 "지금은 가능성이 없어졌지만 정상적인 정치구조로만 할 수 있다면 1990년의 3당합당을 (그 이전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盧대통령은 이날 열린우리당 당선자들과의 청와대 만찬에서 "나는 3당 합당 당시 민주전선이 붕괴된 것을 복원하기 위해 '민주대연합'을 주장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盧대통령은 이어 "그렇게 하는 것이 한나라당 민주계가 과거의 과오를 씻고 우리 정치를 정상적인 상태로 복원하는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새 총리후보 지명과 관련, 盧대통령은 "아직 누구로 갈 것인지 확정되지 않았다"며 "6.5 재.보선을 치르고 난 다음 당 지도부와 상의해 확정하겠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문희상 대통령 정치특보는 "다음달 7일에 대통령 시정연설이 예정돼 있어 8일께 후보 지명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盧대통령은 그러나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총리로) 거론된 것은 열린우리당의 목표 때문"이라며 "전국정당이 되고 지역통합을 이뤄내기 위해 정무직, 정부 주요직에 여러 지역의 인재를 고르게 안배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고민을 하게 됐다"고 밝혀 여전히 金전지사를 유력한 총리 카드로 고려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민주대연합론이란=군사정부에 대항해온 야당은 87년 김영삼.김대중, 양김씨가 동시에 대통령후보로 출마하면서 갈라졌다. 이때 재야 민주세력마저 둘로 쪼개졌다. 지역감정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해 영.호남이 주축이 됐다.

이것은 90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김영삼.김종필 총재와 3당 합당해 호남 고립의 지역구도를 강화하면서 더욱 심화됐다. 당시 초선의원이던 盧대통령은 군사독재 세력과 야합할 수 없다며 김영삼 총재를 따라가지 않았다. 盧대통령은 양김 세력, 분열된 민주세력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민주대연합을 주장해왔다.

최훈 기자

[뉴스 분석] 짧게는 김혁규에 힘싣기 "독재치하 YS 도운 민주세력"
길게는 정치구도 바꾸기 "YS.DJ 화해로 지역벽 깨야"

지난 29일 열린우리당 당선자 만찬에서 '민주대연합' 발언을 할 때 노무현 대통령의 시선은 김근태 전 원내대표를 향했다. 金전대표는 盧대통령이 DJ정권에서 민주대연합론을 펼 당시 뜻을 함께했던 몇 안 되는 인사 중 한 사람이었다.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은 金전대표를 향한 盧대통령의 눈길에서 발언의 배경을 찾으려 했다. '김혁규 총리 카드에 대한 여권 내 논란을 이쯤에서 마무리해 달라'는 주문이자, '민주대연합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金전대표가 나서 당 사람들을 설득해 달라'는 무언의 요청이라는 것이다.

여권 일부가 제기하고 있는 '김혁규 총리 불가론'에 대해 盧대통령은 자신의 역사인식인 민주대연합론을 끌어들여 반박한 것 같다. 청와대 핵심 인사는 "1980년대 재미 사업가로 YS를 적극 도왔던 김혁규 전 경남지사는 넓은 의미의 민주화 세력이라는 게 盧대통령의 생각"이라며 "그에게 총리를 맡기겠다는 것은 3당 합당으로 분열됐던 YS와 DJ의 지역세력을 통합한다는 민주대연합의 역사관과 이어져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단순한 총리지명 문제를 넘어서 盧대통령이 생각하고 있는 향후 정치 구도의 방향성이 드러난 것이란 해석이다.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직후 盧대통령은 사석에서 "(대선구도를 놓고)보수냐 진보냐를 얘기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YS와 DJ를 화해시켜 고질적인 지역구도를 허무는 것"이라며 "이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 본다"고 했다. 민주대연합→전국정당화→지역통합이라는 상황 인식이 열린우리당 당선자 만찬자리에서 표출됐다. 현실화 가능성은 두고 봐야겠지만 정치권은 당장 정계개편 쪽에 촉각을 세웠다. 한나라당엔 김덕룡 원내대표를 포함한 상당수의 YS민주계 의원이 포진해 있다. 민주당의 한화갑 대표는 정통 DJ계 인사다. 이런 가운데 지난 27일 김혁규 전 지사가 상도동으로 YS를 찾았다는 사실을 중시하는 견해도 있다.

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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