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만의 자질 활용하고 사람 다루는 기술 익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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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고위직을 제안하면 남성은 '연봉을 얼마 줄 거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여성은 '내가 잘할 수 있을까요?'라고 주저할 때가 많지요."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2004 서울 세계여성지도자회의' 마지막 날인 지난 29일. 이 회의 마지막 분과토론인 '여성과 기업 리더십'의 발표자로 나선 홍콩 스타TV 미셀 거트리 대표는 "여성 리더에게는 자신감과 열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에는 참석자의 절반인 400여명이 회의장을 가득 메울 만큼 관심이 집중됐다.

거트리 대표는 "기업 경영은 원맨쇼가 아니기 때문에 고위직 여성은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 필요하다. 훌륭한 팀을 꾸려갈 수 있는 능력을 갈고닦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일과 가사.자녀양육 등 세 사람 몫의 일을 해야한다는 점이 여성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말한 그는 "이 발표가 끝나자마자 홍콩으로 날아가 두 딸을 잠시 본 뒤 곧바로 인도로 출장가야 하는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날 토론의 또 다른 발표자인 일본의 유카코 우치타가 IBM 아태지역 부회장은 IBM컴퓨터에서 아시아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최고위직까지 오른 인물. 그는 "아시아 문화에서는 여성이 의견을 피력하기 힘들다. 하지만 물리학을 전공한 전문가였기 때문에 기술에 관해 얼마든지 내 주장과 실력을 펼칠 수 있었다"며 여성이 기업의 고위직에 오르는 하나의 길을 제시했다. 그는 또 "일본기업에서 일했다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최고위직에 오르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다양성을 강조하고 능력에 따라 임용하는 다국적 기업에 취업하는 것도 여성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최초로 여성 임원이 된 이현정 상무는 "역할모델이 없어 여성들이 발전할 수 없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역할모델의 부재가 현재의 자리까지 오는 데 가장 큰 자극제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적 동네 아주머니들이 냄비를 잘 닦은 어느 집 며느리를 최고의 며느리로 칭찬하는 것을 듣고 "한국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이는 18년 뒤 유학이라는 최장의 인생사업으로 이어졌다"는 일화를 소개해 폭소를 자아냈다.

이상무는 "다국적 기업에서는 권위적이고 강력한 남성적 리더가 훌륭한 리더로 인정받지 못한다"며 "여성.남성 지도자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만큼 민주적이고 수평적 리더십이 중요해졌다"고 전했다. 또 그는 "여성 리더들은 남자보다 두배 일하기보다 자신의 영향력을 어떻게 행사할지를 연구하라"고 지적하고 "남성의 모조품이 되기보다 여성의 독특한 자질을 백분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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