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칼럼>한보 청문회를 주목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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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국회 한보청문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그러나 청문회의 앞날은 간단치 않은 것 같다.한보청문회를 어떻게든 공전시키거나 맞불작전을 펴 교착시키려는 김현철(金賢哲)씨측의 음모설 때문만이 아니다.청문회에 참여한 여야 국회의원들이 제

대로 노력하지 않으면 청문회는 한마당의 정치쇼로 전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여당의 정략적 지연작전을 경계해야 한다.

5공청문회 때를 보자.몇몇 의원은 칼날같은 질문으로 청문회스타로 부상했지만 어떤 의원은 증인들에게 빌붙는가 하면 증인들을 옹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작금의 소문들을 보면 여당에는 이른바'소산(小山)인맥'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지난 국회의원선거 때 김현철씨의 막강한 영향력에 의해 공천을 딴 의원들이 소산파(小山派)로 지목되고 일부 전.현직 고위당직자도 소산계로 분류되고 있다.

이 신한국당의원들이 김현철그룹의 작전처럼 야당의 두 金총재에 대한 비리를 폭로하며 맞공세로 나오면 청문회는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충성심을 시험받게 될 야당의원들은 아마도 청문회보다 이에 대한 대응강도에 더 신경쓰게 될 것이기 때

문이다.만약 청문회 도중 정태수(鄭泰守)리스트라도 터뜨려지고 거기에 여당의 중요 의원뿐 아니라 야당의 관련자도 드러난다면 청문회는 한보 추궁보다 의원들의 정치적 처리문제에 휘말려들 가능성이 더 크다.

야당은 공소한 말씨름이나 벌여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몇 차례 청문회나 국정조사특위를 보면 의원들이 실제로 밝혀낸 사실은 별로 없다.대부분'시중의 소문'들을 추궁한다.몇 차례 질문이 지나고보면 대체로 질문거리가 바닥난다.그래서 같은 질문이 반복되고 고함소리만 커진다.야당측이

지금까지 내놓은 몇 가지 의혹이라는 것들도 거의 근거가 불충분한 설(說)이거나 소문 수준이다.물론 의원들이 많은 정보와 자료를 수집하고 제보도 많겠지만 질문자료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공소한 말씨름으로 시종할 가능성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장관이 나오지 않았네,해당 업체나 기관의 장이 나오지 않았네 하는 절차상의 이유로 회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할 수도 있다.국회의원들은 국회 경시니 어쩌고 하면서 소리소리 지르고,시간은 흘러간다.본질은 뒷전이고 국회

권위 세우는데 급급하다 실질적인 일을 제대로 못하는 것-.그것이 우리 국회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다.이렇게 될 경우 국정의 난맥과 비리의혹을 파헤치겠다고 큰소리 친 야당측은 큰 부담을 지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한보청문회가'깽판'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청문회나 국정조사특위는 결론다운 결론을 낸 적이 별로 없다.막판에 조사결과의 처리를 놓고 여야가 대립하면 그것으로 흐지부지 끝나고 만다.야당은 여당의 무책임을 비난하고 여당은 야당의 정략적 행태를 비난한다.그것으로 끝이다

.

아마 이번 한보청문회도 예외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김현철씨든 누구든 청문회 결과 직권남용이나 공무집행방해 또는 뇌물수수와 외압혐의등을 받을 경우 이것을 고발하자는 쪽과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주장이 맞설 것이다.야당은 청문회를'깽판'

으로 만들고 이를 정치적 공세로 이어가는 빌미로 삼으려 할 것이고,여당은 야당의 정략성을 꼬집고 안보위기와 경제위기를 이용하려 들 것이다.

이번 청문회는 그 결과가 12월의 대선에 직결될 것이 거의 확실해 더욱 더 합의된 결론을 얻기는 어렵게 돼있다.그것을 어느 쪽에서든 고의적으로 파탄을 낼 경우 그 책임소재가 어디에 있는지 국민들은 주시할 것이다.

한보사태의 핵심은 비선(비線)정치와 그 아래서 이뤄진 정경유착(政經癒着),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한 권력운용의 문제다.청와대측은 그동안 김현철씨를 외국에 나가있도록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는 말을 흘리면서 그것이 더이상의 상층부로는

튀지 않도록 하려는 것 같다.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이 정권 역시 한낱 가족정치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주고 있다.그의 사조직과 개인사무실이 운영되는 행태를 보면 친구들이 돈을 댔을뿐 김현철씨가 직접 돈

을 만지지 않았다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일 따름이다.그리고 그것을 주변에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변명에 납득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국회청문회가 과연 소산(小山)의혹을 얼마만큼 밝혀낼 수 있을지,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다룰지

국민의 시선은 이 한곳에 쏠려있다.

(김영배 뉴미디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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