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와 함께 웃고 울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93호 07면

주니어 시절 김연아는 그저 신통한 ‘엄친딸’ 정도였다. 피겨스케이팅 하면 나도 30년 넘게 역사를 줄줄 꿸 정도로 열심히 봐왔지만 그 프레임 속에 한국인이 등장하리라곤 상상을 못했다. 그런데 연아가 나왔다. 신기했다. 비슷한 또래의 자식을 가진 엄마의 입장으로선 그 딸이 부러웠고 그 엄마의 노력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윤정의 TV 뒤집기

첫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그 실체를 보게 됐다. ‘그래도 한국 사람인데’ 웬만한 실수나 어색함은 접고 보려고 했다. 근데 첫 점프를 보는 순간 “우아악~” 비명이 튀어나왔다. 수십 년간 봐오던 피겨 여왕들의 레벨이었다. 넋이 나가버렸다. 비록 두 번이나 넘어졌지만 우아한 ‘종달새의 비상’을 마무리하는 가녀린 양팔과 아쉬운 표정은 ‘아름다움’에 대한 잊혀졌던 아득한 기억을 불러오는 듯했다. 완벽한 연아의 팬이 돼버렸다.

무결점의 연기 ‘록산느의 탱고’는 적어도 200번은 넘게 반복해서 보았고 미국·영국·중국·일본·러시아·네덜란드 방송 버전으로 보며 밤을 새웠다. 각국 해설자들의 찬사는 구절구절 외울 정도다. 연아의 첫 점프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가 펼쳐진 뒤 해설자들이 토해 놓는 “오호호호!” 감탄사에선 소름이 돋았다.

아사다 마오의 회전수가 부족하거나, 롱에지의 3회전 러츠나 플립과 연아의 러츠 화면을 놓고 보면서 세계선수권대회 편파 판정에 며칠 동안 흥분하기도 했다. ‘승냥이’가 돼버린 나는 연아에게 ‘여왕’의 호칭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쯤 돼서는 연아는 뛰어난 스케이터뿐이 아니었다. 노래도 잘하고 모델로서도 훌륭하고 광고도 근사하지만 무엇보다 멋진 건 ‘대인’의 품성이었다. 부상과 경쟁의 부담감이 대단할 텐데도 경기에는 뜨겁고 승부에는 초연하며 오버하지도 않고 냉소적이지도 않은 딱 알맞은 온도의 자세와 언행을 보여줬다.

귀엽고 섹시하고 우아하면서도 소탈한 그녀는 마치 어느 별에서 날아온 외계인이거나 하늘이 내린 보물 같았다. 연아는 이제 내게 ‘여신’이었다. 사이비 종교 집단이 왜 생겨나는지 공감하면서 “연렐루야”를 외쳐댔다. 연아가 나오는 화면만 보아도, 연아가 쓰는 배경 음악만 들어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니 멀고 먼 타국의 고행길을 돌아 조국 땅에서 펼쳐지는 그의 경기는 ‘연아교’ 신도들의 부흥 집회였던 것이다. 당연해야 할 우승에 흥분하고 싶었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쇼트 프로그램에 나온 여신을 보면서 신도들은 ‘아차’ 싶었다. 여신의 표정과 긴장의 강도가 전에는 볼 수 없던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실수가 있었고 마무리 부분의 입 벌린 모습 역시 올해 내내 볼 수 없던 표정이었다. 그리고 연아의 눈물이 흘렀다. 신도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의 여신은 외계인도 아니고 신도 아니었음을. 그저 극도의 부담감과 긴장에 바들바들 떠는 한낱 작은 소녀였을 뿐임을.

한결 차분해진 이튿날 연아는 또다시 넘어졌다. 꿈꿔 왔던 조국 땅에서의 우승도 날아갔다. 하지만 보는 이들은 서운하지 않았다. 그저 오랜 시간 외롭게 갈고닦은 그 소녀의 기교와 아름다움을 보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깨달았을 뿐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연아야. 이제 나는 너를 승리와 성취와 뛰어남 때문에 찬양하는 여신으로 모시지 않을 거야. 대신 우리에게 너의 노력과 승부와 실패에 같이 기뻐하고 안타까워할 수 있는 추억을 안겨준 소중한 친구로 기억할 거야.’


이윤정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 출신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filmpool@gmail.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