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랫말의 미학>上. 외국가요(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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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당연한 말이지만 가사는 음악의 요소들 중에서 가장 언어적이고 문학적이다.역으로 말하면 음악은 대부분 비언어적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따라서 언어적 해독을 하지 않더라도 음악에서 쾌락을 얻는 방법은 여러가지다.멜로디를 흥얼거리거나 리

듬에 맞춰 몸을 흔들 수도 있고,화성의 오묘한 전개에 감탄할 수도 있다.

가사의 중요성이 결정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사가 없는 대중음악은 거의 없다.클래식이나 재즈에서는 점차 소멸해갔던 이 문학적 요소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진정한(authentic)'음악(포크든,재즈든,블루스든,록이든)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즉'보통의'팝음악 가사는 허위적인 반면'진정한'음악의 노래말은 진실한 감정의 표현이라고.예를들어 60년대 뮤지션

들 중에서 보브 딜런이나 존 레넌의 가사는'시(詩)'로 대우받는 반면 폴 앵커나 클리프 리처드의 가사는 난센스거나 상투적인 것으로 절하된다.

확실히 대부분의 팝음악 가사는 대부분 감정 과잉의 감상주의로 흐르기 때문에 허위적으로 들린다.그런데 진실한 감정의 객관적 기준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또 진실한 사적 감정을 표현한 가사가 허위적인 가사보다'대중성'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오히려 진부함을'싫어하는'듯한 사람들도 진부한 가사를 쌍지팡이로 반대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일이 필요하다.한밤중에 차타고 가다“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할 때(When a man loves a woman)”라는'짜증나

는'가사를 듣고“싫어”라고 말할 강심장의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현대인은 자신의 사적 감정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만한 것인지에 대해 막연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다.우리 주위에서 그런 두려움을 해소시킬 방법은 많지 않다.대중음악의 가사는 두려움을 환상 속에서 해소시켜 주는 익숙한 매체다.그래서 우리

의 고단한 삶은 참고 살만한 것이 된다.

그런데'정상적'가사가 곧'좋은'가사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점점 미궁에 빠져드는 듯하다.

물론 추상적이고 모호한 방식으로 가사를 운용하는 아방가르드(전위)의 전통이 존재하지만 이 전통은 어쨌든'평범한'팝음악과는 거리가 있다.오히려 나는“천재적 작사가는 매우 진부한 문구를 사용해 참신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한 평론가

제임스 클라이브의 말에 동의하는 편이다.평범한 표현 속에 비범함을 가진 가사.

그의 말에 한마디를 덧붙인다면'참신하게 만드는'과정에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가사가 '좋은'가사다.“저 가사 도대체 무슨 의미야?”라는 질문이 투쟁의 시작이다.물론 그 투쟁은'재미'를 위한 것이다.그래서 나는 일상의 진부한

표현에'유머'를 담아 의미를 반전시킬 가능성을 내장한 가사에'좋은'이라는 형용사를 붙이고 싶다.

독자 여러분.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You know what I mean?.존 레넌& 폴 매카트니 1963).어떻게 느끼시나요? (How does it feel?.보브 딜런 1965).너무'옛날'음악에서만 예를 들었나요? 하지만

저는 아는 것만 알고 있고 제가 말하는 대로 노래할 뿐이죠(I know what I know.I sing what I say.폴 사이먼 1986).

신현준〈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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